바이트와 친구들

친구들의 취향: 2020. 01.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음악을 들을까?' 단순한 정보의 공유를 넘어 가장 사적인 취향의 공유가 인터넷의 안팍에서 쉴 새 없이 일어나는 시대지만, 우리는 가장 가까운 친구의 음악 취향 조차 잘 알지 못한다. 최근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어떤 음악이 제일 좋았는지 알지 못한다. 타인의 음악 취향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친구들의 취향' 시리즈가 어느덧 6회째를 맞이했다. 회차가 거듭될 수록 분량이 늘어나는 것 같지만, 읽는 이의 기분탓임을 미리 고지한다. 2020년 1월 친구들의 취향이다.

LULLABY FOR A CAT (Unedited)

Epik High

이현호 (Bite) :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Epik High의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곡으로, [sleepless in __________] 앨범에 수록된 곡의 무편집판이다. 아무래도 앨범에 실린 버전의 간결함이 좋긴 하지만, 잠들지 못하는 밤의 상념이라는 주제에는 이쪽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게다가 한밤에 타인의 무탈함을 기원해주는 마음 씀씀이도 마음에 든다. 덧붙여서 이 곡은 타블로가 진행하는 The Tablo Podcast의 오프닝 곡이기도 한데, 요즘 나의 최애 팟캐스트이다.


i want to write you letters

sophie meiers + seneca b

이재은 (Bite) : 대체로 색체가 느껴지는 음악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가장 좋아하는 건 파스텔톤 컬러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흘러가는 느낌을 주는 음악들이다. 최근에 선곡을 위해 디깅하던 중 우연히 알게된 Sophie Meiers라는 아티스트가 있다. 차분하고 따듯한 색감의 목소리를 가진 아티스트다. 약간은 재지한 보컬 스타일이 곡의 무드에도 잘 어울린다. 잠들기 전에 듣는 다면 편안하고 기분 좋은 꿈을 꿀 것만 같은 곡이다.


Cocktail (Feat. SFCJGR)

형선

김정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 @melo7421) : [The Baker]에서 비앙을(Viann)을, "B-A-B-Y"에서 재규어중사(SFC.JGR)를 만난 인연이 하나로 연결된 듯한 형선(HYNGSN)의 신곡이다. 비앙의 야리꾸리한(?) 실험적 사운드와 재규어중사의 90년대 멜로 영화 같은 레트로한 목소리가 이렇게 서로 잘 물릴 줄이야. 물론, 그 중심에는 양쪽의 감성을 모두 이해하고 움직일 줄 아는 형선이 있다.


Rooftop Chillin'

THE RUFF PACK

김경태 (인천에서 도 닦는 사람) : 달리는 동물의 해에 태어나서 그런지 정신을 차려보면 항상 어딘가로 (미친 듯이) 달리고 있다. 이런 눈 가린 경주마 같은 삶이 절벽 끝으로 폭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심신 안정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한데, 박자를 밀고 당기는 노래들을 들으면서 4분음표가 아닌 온음표로 끄덕거리는 것을 연습하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아직 2020년이 90% 이상이나 남았으니 5분 만이라도 느긋하게 연주를 즐겨보자.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장범준

박준우 (포크라노스 에디터 / @bluc_) :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를 정말 많이 추천받았지만 정작 정주행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장범준은 정말 한국인에게만 해당하는 어떤 공식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느꼈다. 귀신 같은 사람... 장범준 곡은 이상하게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 다음 그제서야 제대로 들어보게 된다. 이 탑 라인을 어떻게 학습했는지 나도 정확한 과정은 모르겠지만, 길가나 TV에서 듣는 몇 번의 멜로디가 남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음악이 해외에서도(특히 아시아) 이렇게 좋은 반응을 거둘 수 있는지 궁금하다.


Feels Like We Only Go Backwards

Tame Impala

김용후 (비트메이커 / @yngh.hoodiak) 아침 지하철을 타고 강남으로 향하는 출근길은 정말 죽을 맛이다. 피곤한 몸을 사람들이 꽉찬 지하철에 억지로 끼워 넣으면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싶다. 그 속에서 이 노래를 들으면 좁게 서 있던 나의 공간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듯하다.
이 곡은 의도적으로 많은 울림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느껴지는 공간감은 특정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반향이라기보다는 내 머리 속에서 발현되는 울림으로 느껴진다. 초신성이 폭발하듯 내 머릿속에서 어떤 에너지가 계속해서 뿜어나오는 것 같고, 그 에너지에 집중하다 보면 정신이 몽롱해진다. 진실로 아티스트는 약을 한 사발 거하게 빨고 이 곡을 썼나 보다.
'It feels like I only go backwards, baby'라는 가사는 거꾸로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군중 속의 한 명이 아닌, 내가 주체가 되어 삶을 살게하는 힘을 준다. 그래서 맨날 반복되는 출근 지옥 속에서도 버틸 수 있다. 음악은...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니깐....☆


Like I Do

AWA

김현호 (A&R / @meongtoes) : 어떻게 글을 쓰는지 잊어버렸다. 한동안 음악을 듣고 글을 쓰지도, 생각도 하지 않았더니 생긴 부작용이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자판으로 쳐내는 일은 항상 고민의 연속이다. 이럴 때는 몇 가지 루틴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좋아하는 문장이 가득한 책을 읽거나, 전에 쓴 글을 읽거나, 연습장에 글을 아무렇게나 펼쳐보는 것이다. 제일 효과적인 방법은 낯선 음악을 찾아 인터넷을 뒤져보는 것이다. 잘 모르는 가수의 좋은 곡을 찾으면 긍정적인 생각이 끝없이 샘솟는다.
이번에도 음악을 뒤져보다가 우연히 AWA의 'Like I Do'라는 곡을 들었다. 듣자마자 '이번 달은 이 곡이다'라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스웨덴 이민자 가족 출신으로 오디션 프로에서 1등을 하고 영국에서 메이저 활동을 시작했다는 이력도 마음에 들었다. "Like I Do"를 비롯해 발매된 싱글 몇 개를 반복해 듣다 보니 정규 앨범도 얼른 듣고 싶어졌다. 이래서 낯선 발견이 좋다. .


12番街のキャロル

Takashi Sato

Urakkai haruki (연남동 음교익) : 캐롤 그리고 술..이라고 하면 모니터(요새 누가 모니터로 보냐 임마) 앞의 여러분들은 파티에 곁들여지는 스파클링 샴페인 같은 것을 먼저 떠올릴 것이라 의심치 않습니다만, 삼사십 년 전의 동쪽 섬나라 어느 12번가에서는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홀로 된 사나이의 회한을 미즈와리도 하지 않은 채 입안에 털어 넣고, 식도가 타는 느낌을 온몸으로 참아내며 들어야 하는, 사토 타카시의 명곡 12番街のキャロル(12번가의 캐롤)이 있기 때문이죠.
이제 없는 당신을 잃고 난 후 처연하게 외치는 이 곡의 가사를 비록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정념 가득한 목소리 바깥의 텍스쳐에 선연하게 드러내는 안타까움의 감정은 언어와 사고의 틀을 넘어 청자의 뇌 주름에 깊고 아프게 박히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NAGOMI

釈迦坊主

soulitude (정체불명) : 겨울도 막바지로 접어드는 지금, 세상은 전염병으로 인한 공포로 오히려 더욱 차갑게 얼어붙은 듯하다. 이런 시기에 문득 생각나는 아티스트가 있다. 바로 샤카 보즈(釈迦坊主)다. 이름부터 ‘석가스님’인 것이 범상치 않은데, 처음 귀를 사로잡았던 그의 노래는 바로 "meteor"였다. 포스트 말론(Post Malone)을 처음 들었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중독적인 보컬과 그 안에 담아내는 오묘한 가사가 인상적이었다. 이후 듣게 된 "Thanatos"라는 트랙에서는 이 래퍼의 독특한 오컬트적 사상이 작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샤카 보즈의 이러한 가사와 음악색은 그의 인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16살 때부터 가부키쵸에서 호스트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온갖 불법과 폭력, 마약이 횡행하는 뒷골목 생활을 하며 본인도 약물 중독에 빠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한 현실에서 게임으로 도피하며 게임과 게임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그는 음악 안에서 '우주', '종교', '신' 같은 소재들을 폭넓게 다룬다. 최근에는 새로운 EP [NAGOMI]의 가사 비디오를 공개하기도 했는데, 대부분 작업물처럼 작사/작곡/엔지니어링 모두 혼자 해냈다.


Good Guy

SF9

김현미 (전 ㅍㅍㅅㅅ에디터, 케이팝관전러 / @wolfandhorse) : 지난 1월 17일 SF9이 뮤직뱅크에서 첫 공중파 1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2016년 데뷔했다. 무려 3년을 넘게 버틴 끝에 얻게 된 성과다.
SF9는 냉정하게 말해서 음악으로 인정받은 팀은 아니다. 하지만 음악이 좋아서 아이돌 그룹이 주목받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SF9의 행보는 한때 제국의 아이들과 닮은 구석이 있다. 그룹 자체의 인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임시완과 박형식이 연기로 주목받았던 것처럼, SF9이 대중의 눈에 들기 시작한 것도 멤버 찬희가 드라마 <SKY캐슬>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린 이후다. 최근에는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 출연한 로운이 주목받았다. 제국의 아이들과 다른 점이라면, 이렇게 끌어들인 멤버 개인의 인기를 흩뜨리지 않고 아이돌 그룹의 팬덤으로 단단하게 응집시켰다는 점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아이돌 그룹으로서 SF9이 가진 역량 때문일 것이다.
1위가 그들을 슈퍼스타로 만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성공은 계단식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음악방송 1위 가수가 슈퍼스타인 것은 아니지만, 슈퍼스타로 가는 길목에는 반드시 음악방송 1위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첫 1위는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다. 방탄소년단도 한때는 첫 공중파 1위 트로피를 받던 때가 있었다.
앞서 SF9이 음악으로 인정받은 팀이 아니라고 말했다. 1위를 거머쥔 타이틀곡인 <Good Guy>는 준수한 아이돌 댄스 음악이지만, 콘셉트나 완성도에서 강렬한 인상을 전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금부터의 행보가 중요하다. 어떤 곡을 들고나오든 지지해줄 팬덤이 자리잡힌 이 시점에서, SF9는 더 많은 대중을 설득하는 행보를 걸어야 한다. 그것은 더 뚜렷하고 더 새로운 콘셉트, 그리고 새로운 음악이 될 것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이제 시작이다.


I’d Do It All Again

Corinne Bailey Rae

띠오리아 (케이팝애티튜드 / @theoria_) : 설 연휴를 앞두고, 이 취향 글 연재를 주관하고 계신 지인께 원고 연락을 받았다.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이랬다. '이번 달에 들은 음악이 없는 것 같은데.' 정말 아무것도 듣지 않은 건 아니다. 우선 언급할 것이 있는데, 내 네이버 포스트에는 이 취향글 연재의 선곡 기준에 대해 적은 적이 있다. 그달에 발매되었으며 최소 두 번 이상 들었고 200자 이상 할 말이 있거나 개인적인 사연이 있는 곡. 이미 11월에 그달에 발매된 곡이 아닌 곡을 적은 적이 있으니 그 부분은 유연하게 넘어가더라도 나머지 둘이 모두 해당하는 곡은 도통 없었다. 새해 들어 내가 자의로 두 번 이상 들었던 곡은 딱 세가지로 분류가 된다. 내가 만들었거나 작업에 참여한 곡, 그 곡의 레퍼런스, 그리고 1월에 나갔어야 하지만 아직 녹음도 못 한 2020년 이달의 케이팝 탐구 첫 화의 선곡 후보. 셋 다 추천을 목적으로 작성할 글에서 다루기는 좀 애매했다.
몇 주가 더 지나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는 2월 8일 새벽이고, 그 사이에도 두 번 이상 들은 곡은 없었다. 그냥 죄송하다고 하고 이번 달은 넘겨야 할까 고민을 잠깐 했는데, 그냥 이 곡을 들으며 울었던 기억이 났다. 1월에 발매되지도 두 번 이상 듣지도 않았지만, 굳이 뭔가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이걸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곡이 슬픈 곡은 맞는데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몇 달 전부터 알 수 없는 저기압이 이어지고 있고, 이유 없는 눈물이 너무 많아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계기나 원인을 모르겠다. 그게 나를 좀먹을 정도로는 괴롭진 않지만 어쨌든 극복하기는 어렵다.
고통을 감내할 정도의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 곡은 코린 베일리 래의 사별한 남편의 생전, 그와의 다툼으로 인해 만들어졌고 다툼의 배경에는 약물 중독이 있었다. 그것은 사망원인이기도 했다. 다소 맹목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이 곡의 가사는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와의 모든 일을 반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니까. 그리고 사별이랑 배경이 추가된 이 노래는 마치 세상을 떠나기 전으로 돌아가도, 그가 약물 중독으로 고통받고, 그로 인해 다투고, 또 사망할 걸 알더라도, 나는 똑같이 너를 사랑할 거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 거대한 사랑에 대한 생각 또는 경험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이 곡이 나왔던 약 10년 전에 나의 음악 인생에 빗대어 생각했던 적은 있었다. 만약 내가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음악을 하면서 받았던 모든 괴로움을 감수하고 또다시 음악을 할 수 있을까? 그 당시엔 당연하게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음악은 더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다.


DEATHCAMP

Tyler, The Creator

심은보 (Visla Magazine 에디터 / @shimeunboss) : 매년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에서는 논란이 하나씩 생긴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의 무관과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의 수상이 떠오른다. 두 아티스트 모두 2019년에 커리어 하이라 말할 수 있는 앨범을 발매했지만, 결과는 명확히 대비됐다.
이중 라나 델 레이보다는 타일러의 앨범을 더 많이 들었다.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타일러가 작중 참여한 여러 보컬-릴 우지 버트(Lil Uzi Vert), 솔란지(Solange), 프랭크 오션(Frank Ocean 등-을 어떻게 썼는지, [Flower Boy]와 [IGOR]가 어떻게 다른지 따위의 말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앨범을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들은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타일러의 모든 앨범을 처음부터 다시 들었다. 나는 [Bastard]와 [Goblin]을 좋아했다. [Wolf]부터 [Flower Boy]까지는 그에 관한 관심을 끊었던 시기다. 그니까 그의 앨범을 다시 찾아 듣기까지 무려 6년이 걸린 셈이다. 그런데 [Goblin]과 [IGOR]는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앨범을 하나의 스토리로 요약해서 타일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이에게 보여준다면, 그 사람은 두 작품의 작가가 다르다고 말할 게 분명하다.
그렇게 디스코그래피를 뒤지다가 [Cherry Bomb]에 눈길이 갔다. 타일러가 오드 퓨처(Odd Future)의 멤버들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들을 앨범에 참여시킨 게 보였고, 가사에서 본인의 이고를 드러내기 시작한 게 들렸다. N.E.R.D의 [In Serach of…]가 나스(Nas)의 [Illmatic]보다 좋았다는 가사가 들어있던 것도 기억이 났다. ‘[IGOR]의 타일러가 어디서 왔냐’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면 [Cherry Bomb]을 꼽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IGOR] 대신 [Cherry Bomb]의 첫 트랙인 “DEATHCAMP”를 이달의 곡으로 정했다. 그 외에 “DEATHCAMP”를 꼽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글쎄. 나 역시도 [Illmatic]보다 [In Search Of…]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