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트와 친구들

친구들의 취향: 제 12호

음악과 계절은 서로 결코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여름에 듣기 좋은 노래가 있다면, 봄이 끝나기 전에 반드시 듣고 싶은 노래도 있는 법이죠. 바이트와 친구들에게 여름으로 가는 길목인 지난 5월 즐겨 들었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So.Incredible.pkg [Robert Glasper Version]

Denzel Curry, Kenny Beats & Smino (feat. Robert Glasper)

이현호 (Bite / @hyunho.bite) : Denzel Curry나 Kenny Beats의 음악을 평소에 많이 듣지는 않아서, 가장 눈에 띄었던 이름은 Robert Glasper였다. 재즈를 기반으로 R&B나 힙합에서도 폭넓게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그가 작업한 이 곡은 [UNLOCKED]라는 앨범에 수록된 곡을 리믹스한 앨범 [UNLOCKED 1.5]의 첫 번째 트랙이다. 좀 더 전통적인 힙합의 비트감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던 원곡과 달리 은은한 보컬 샘플과 함께 재즈의 향, 힙합의 맛이 고루 섞인 버전으로 재탄생했는데, 편곡의 사운드가 강하지 않음에도 오히려 Denzel Curry의 박력 있는 랩과 더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 난다. 기존의 Denzel Curry의 히트곡들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겁게 들을 수 있는 트랙일 것이다.
Denzel Curry와는 지난 2017년 내한 당시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가졌던 적이 있는데, 쿨하면서도 진지한 모습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내한을 기회로 인터뷰를 진행했던 아티스트들 중에서는 가장 핫한 시기에 내한을 했다가 이후로는 다소 주춤한 행보를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이렇게 꾸준히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아티스트들을 볼 때면 괜히 더 특별한 기분이 든다.


לעשות טוב (Do Good)

J.Lamotta

이재은 JANE (Bite / @janebelizzie) : 정말 좋은데,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제목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조차 모르지만, 홀린 듯 이 노래에 빠져들게 됐다. 지인의 플레이리스트를 듣던 중 알게 된 노래인데, 아무 생각 없이 듣다가 노래가 좋아서 집중하게 됐고 내가 알아 들을 수 없는 언어로 된 노래라는 걸 뒤늦게 자각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알아보니 제이 라모타는 독일을 기반을 활동하는 아티스트이지만, 이스라엘의 텔 아비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히브리어 가사로 이루어진 노래라서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포근하고 나른한 멜로디가 제대로 취향을 저격해서 적당히 따듯하고 시원한 바람이 감싸는 5월의 봄날에 자주 꺼내 듣곤 했다.


Rocket

NCT Dream

ㅂㅇㅇ (Bite / @120p6) : 어느덧 문샤인에 심장이 뛰는 사람으로 성장해버렸다. 앨범 홍보 당시 가장 언급이 적었던 곡이라 정말 아쉬웠다. 트랙비디오·뮤직비디오로 먼저 듣고 기대감과 만족감 모두 있었던 타이틀과 수록곡을 제치고, 나의 완벽한 취향 저격 곡이었기 때문이다.
이 노래야말로 타이틀곡보다 더 앨범 커버 아트웍 일러스트에 어울리는 곡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미국 애니메이션의 키치함이 잔뜩 묻어나는 노래다. 노래 자체가 무지개 뜬 하늘을 뛰어다니는 장면 같지 않은가?, “가짜 여름*”이지만 피냐타에서 터져 나오는 사탕들, 뛰어내림과 동시에 폭죽처럼 터져 나오는 볼풀의 형형색색 공들이 연상된다. 조금 더 현실성 있게 비유하자면 여름방학 과학 숙제로 만든 페트병 로켓이 저 멀리 튀어 올라갔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 같달까? (물론 나는 그런 경험이 없다) 현실성이 있든 없든, 신나고 힘찬, 당당한 에너지가 가득한 Rocket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탕-
또 있나?
* 가짜 여름: 날씨 또는 상황이 영화/만화 속에나 있을 법한, 덥지만 불쾌함이 없는 시원한 느낌의 상상 속 여름 이미지


Gimmie Got Shot

YG

snobbi (HIPHOPLE 에디터 / @snobbi) : 더위를 뚫고 귀를 찌르는 신스음, 걸음걸이를 바꾸게 만드는 걸쭉한 그루브. 지펑크(G-Funk)는 지금까지의 내 모든 여름에 펴발라진 사운드트랙이며, 특히 YG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Still Brazy]는 발매 이후로 벌써 5년째 고정적인 선택을 받으며 내 마음속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다. 이중 “Gimmie Got Shot”은 요즘 가장 꽂힌 수록곡이자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트랙. 성공 이후 그에게 마구잡이로 도움을 청하는 친구 비슷한 것들의 손길, 결국 적이 아닌 지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게 되는 YG의 울분이 쨍한 웨스트 코스트 사운드 위에서 그려진다. 단 3분 만에 컴튼 출신 셀러브리티 갱스터가 겪는 고뇌를 ‘찍먹’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들어볼 가치가 있다.


PINKTOP

The Volunteers

김나일 Nyle Kim (그래픽 디자이너 / @egyptnileriver) : 어릴 때부터 엄마가 라디오헤드, 퀸, 오아시스 등 영국 밴드 음악을 자주 들려줬었던 기억 때문인지 커서도 락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고 락 페스티벌 가는 것도 좋아한다.
최근 The Volunteers의 새로운 앨범이 나왔는데 내 기준에서 정말 오랜만에 락스러운 락 음악이 나왔다. 우와 너무 설레고 당장이라도 락페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여성 보컬의 락 밴드가 이런 브릿락을 한다니 정말 너무 설레고 한국 락이 다시 살아날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이번 새 앨범 수록곡 중 타이틀 곡 중 하나인 PINKTOP을 가장 좋아한다. 도입부 기타 사운드와 여름 락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웅장하고 뭔가.. 자유로운 느낌?
앨범이 전체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브릿락의 느낌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듣기로는 백예린이 브릿락의 영향도 많이 받았고 전부터 밴드를 하고 싶어 했다고 들었다. 브릿락의 느낌을 너무 세련되게 잘 살린 것 같아서 The Volunteers의 앞으로의 음악들이 너무 기대된다. 많은 사람들이 락 음악 하면 무조건 시끄럽다라는 고정관념이 아직 있는 것 같은데 The Volunteers가 그런 고정관념을 깨줄 음악을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하루빨리 모두 마스크 벗고 락 페스티벌에서 만나면 좋겠다.


Horsey

Seahorse feat. King Krule

Stel (여름맞이 선풍기 청소를 마친 자 / @nonotlikethat) : “멋있는 노래란 무엇인가?” 누구나 자기만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멋있는 노래란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1. 여운이 남는다
2. 머릿속에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3. 누구든 붙잡고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차오른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멋진 노래이다. 처음 들었을 때 노래가 끝나기 직전 서둘러서 다시 듣기를 눌렀다. 머릿속에는 온갖 이미지가 떠올랐다. 인센스 스틱 끝의 불똥, 비벼 끈 담배꽁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깊은 밤 수영장 바닥에 어른거리는 물결무늬도 떠오르고, 심해를 느리게 누비는 생명체 같기도 하다.
고로 누구든 붙잡고 추천해야겠다. 친구들의 취향’의 자리를 빌려, 멋있는 노래 하나를 강력 추천한다.
5월 둘째 주에 공개된 싱글 ’Seahorse’은 남부 런던의 밴드 Horsey와의 콜라보 곡이다. 킹 크룰의 1집 앨범을 좋아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익숙한 사운드스케이프가 반가울 것이다. 콜라보한 두 아티스트의 인연은 (적어도 나와 관해서는)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살면서 공연을 가장 많이 다닌 해였다. 열 몇 개가 넘는 공연들 중 제일 멋있었던 건 고민 없이 영국 현지에서 본 킹 크룰 (King Krule)의 라이브클럽 쇼였다. 점잖아 보이던 현지인들은 음악이 시작되자 공중에 맥주 컵을 던지며 크라우드서핑을 했고, 2층 발코니석의 사람들은 기둥을 붙잡고 난간에 서서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안전요원들은 뭘 하고 있던 걸까?) 무한한 지지와 사랑의 틈바구니에서 감상하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오프닝 공연까지 완벽했는데, 사람들 사이에 밀리고 치이면서도 메모장 앱을 열어 밴드 이름을 메모해두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느덧 2021년, 기억 속의 그 오프닝 밴드가 킹 크룰과의 콜라보곡을 들고 돌아왔다. 가사는 초현실주의 연극 같고, 재즈 스타일 드럼 위로 파도처럼 이리저리 아치 마셜의 보컬이 얹히는 Seahorse는 곧 발매될 Horsey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의 마지막 트랙으로 실리게 될 예정이다. 발매 소식이 들려올 때까지 여름밤 창가에 인센스처럼 한 번씩 태워야겠다.
번외로, 뮤직비디오도 아주 멋지다.


Light

태민

와다킴 (직장인 / @meongtoes) : 태민의 새 EP는 들을수록 흥미롭다. 앨범명과 동명의 타이틀곡인 "Advice"가 뿜어내는 강렬한 주제 의식을 이어지는 네 수록곡이 뒷받침한다는 느낌이 드는 탓이다.
"Light"는 그 시작에 선 곡이다. 가사의 표면적인 의미만 살피면 단순히 연인을 빛에 빗대어 표현하는 곡으로 보인다. 하지만 앨범의 맥락 안에서 살피면 그 의미가 조금은 더 다층적으로 다가온다. 앞선 "Advide"에서 고정관념에 의존해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타인을 향해 분노를 표한 화자가 캄캄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본 후 비로소 자신에게 알맞은 색과 빛을 찾았다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사가 다소 중의적이고 상대가 특정되지 않아서 이런 해석을 하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러 가지 요소를 살피고 생각의 가지를 펼치듯 해석을 하며 듣고 읽는 것이 대중음악을 듣는 또 다른 재미라고 생각한다. 태민의 "Light'를, [Advide] EP를 들으며 오랜만에 그런 재미를 느꼈다. 이런 즐거움을 준 태민이 군대에 가다니, 역시 군대는 좋지 않다.


F N sexy

JAHKOY

Som (알수없솜 / @som__ish) : 평소처럼 지나던 길가에서 보지 못하던 흐드러진 장미 덩굴을 발견할 때 비로소 여름의 시작을 예고하는 계절임을 실감한다. 평균 기온 20도 안팎을 오가는 '어떨 땐 춥고, 어떨 땐 더운' 날들 속에서는 스리슬쩍 가라앉는 끈적한 바이브에 몸을 맡겨야 할지, 쨍쨍 들뜨는 바이브를 꺼내 들어야 할지 어렵기만 하다.
사랑해마지않는 Kehlani의 2017년 작 [SweetSexySavage]에 한창 꽂혀있을 때 알게 된 R&B 가수이자 래퍼, JAHKOY의 "F N sexy"는 이런 본격적이지 않은 초여름의 바이브를 그대로 반영하는 곡이다. 도입부부터 곡의 끝까지 단순 반복되는 드럼 리듬과 멜로디. 그 위에 차분하고 끈적하게 깔리는 JAHKOY의 목소리. 네가 존X 섹시해서 그게 너무 좋다는 이 남자의, 거부할 수 없는 지독한 사랑의 질척거림(?)이 이렇게 섹시할 수 있나. (괜히 야밤에 실눈 뜨고, 콧대 높은 척하며 실키한 슬립을 걸치고 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하면... 오바인가요?) 너무 로우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하이하지도 않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그저 스리슬쩍 흘려보내도 될 것 같은 그런 계절과 그런 기분. 듣다 보면 괜히 잊고 지내던 TLC의 노래들을 함께 꺼내 듣고 싶어진다. 들썩였다가 또 그루비해졌다가... 어느 한 장단에 맞추기 힘든 오묘한 초여름과 이 노래, 그저 Fuxxing Sexy 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