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트와 친구들

친구들의 취향: 2019. 10.

가을과 겨울의 모호한 사이에 있는 시기, 10월이 슬며시 찾아왔다 금새 떠나갔다. 온도가 내려가고 살갗으로 느끼는 게 달라지면 듣는 음악에도 조금씩 차이가 생길까? 날이 더 추워지기 전, 친구들에게 지난 10월에 들은 음악과 취향에 대해 물었다.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견해를 풀어준 친구도, 음악과 계절의 변화를 엮어서 이야기해 준 친구도 있다. 시간 내어 취향을 글로 옮겨 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nding Page

f(x)

이현호 (Bite) : 10월 중순에 이 곡을 많이 돌려 들었다. 음반 [Pink Tape]에 대해서는 내가 여기서 더 찬사를 덧붙인다는 것 자체가 과한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작품의 세련된 사운드에 대한 논의에 비해 이 앨범에 수록된 섬세한 노랫말들에 대한 언급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f(x)의 대중적인 이미지 역시 '꿍디꿍디'로 대표되는 '4차원 가사 그룹' 정도로 인식되었는데, 마케팅 측면에서 어느정도 유의미한 것이었을지는 몰라도 그들의 가사가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 된 것은 아닌지 아쉬운 측면도 있다.

[Pink Tape]을 마무리하는 곡 'Ending Page'는 상대방의 차가운 마음에 외로움을 느끼지만 언젠가 이 혼란을 함께 극복하고 사랑이라는 결말을 맞이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는 곡이다. 특히 외로움을 지나고 희망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을 "깊은 눈물을 건너 바람 부는 사막 같은 외로움을 지나는 나의 발걸음 끝에 꼭 있어줘"라고 표현한 브릿지는 감정적으로 이 앨범을 매듭짓는 좋은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외로움 속에서도 'Ending Page'는 '나의 소설'이 아닌 '우리의 소설'을 이야기하는 곡이다. 각자의 사막을 지나는 모두에게 우리가 서로의 오아시스가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Céline

Gallant

이재은 (Bite) : 발매되고 나서, 하루에 세 번씩 통으로 돌려 들었던 앨범. 처음 들었을 때는 어딘가 예측 가능한 느낌이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계속 손이 가던 앨범이다. 그 중에서도 세련된 무드로 앨범의 데미를 장식한 마지막 트랙 “Céline”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앞서 말했듯. 전반적으로 ‘예측 가능한’ 무난한 흐름 끝에 발산되는 느낌의 곡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Mr. Sun

Greentea Peng

이상훈 (A&R) :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 메이시 그레이(Macy Gray), 에리카 바두(Erykah Badu)를 연상시키는 영국 신예 아티스트 그린티 펭(Greentea Peng)의 "Mr. Sun (Miss Da Sun)" 뮤직비디오를 가장 인상 깊게 들었다. 11월 1일 그린티 펭의 EP가 발매되었을 테고 아마 나의 11월의 배경음악은 그의 EP로 채우게 될 것 같다.


Common Souls

Jasmine

XIMON (음악가) :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는 게 금방 추워질 것 같다. 재스민의 Common Souls는 봄에 들으면 봄 느낌이 나고 겨울에 들으면 겨울 느낌이 나는 곡이다. 이 노래를 들으며 지금의 겨울 같은 날씨가 더 잘 느껴졌다.


Gravity

태연

띠오리아 (케이팝애티튜드) : 개인적으로 태연은 좋은 보컬리스트로는 조명을 받았지만, 어쩐지 음반의 성취 자체에 대해선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는 기분이 있다. 아마 그가 그만큼 뛰어난 보컬리스트이기 때문이기도 할 테고, 동시에 SM에서 지금까지 보컬리스트로의 태연만 부각해온 부작용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건 내 착각일 수도 있다. 썩 괜찮은 이번 음반을 들으며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을 했다. 그의 보컬이 아닌 음반 자체에 대한 평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며 가장 재밌게 들었던 이 곡을 추천해본다. 사족이지만 어딘가 뉴에이지 같기도, 조금은 가스펠 같기도 한, 아무튼 어딘가 고풍적인 이 곡의 가장 큰 특징은 묘하게 종교적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일루미나티로 여러 차례 SM을 지적해오신 예레미야 목사님이 이 곡을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하실지 궁금하다.


Long Way Home

Emma Sameth

정욱현 (작곡가) : 멜로디 라인과 보컬 보이스가 듣기 편하다. 어쿠스틱 음악 같다가도 후렴에는 신스 소리가 들리고, 1절과 2절에는 각각 베이스 기타와 808 베이스가 들린다. 이렇게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점진적으로 빌드업을 하는 것 같다. 808 베이스와 킥 소리, 후렴의 도입부 등에서 조금만 더 디테일이 살아있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 늦은 밤, 귀가할 때 듣기 좋은 곡이다.


BLACCK (Live)

Jon Batiste

류희성 (월간 재즈피플 기자) 여러 패션 브랜드와 패션지의 러브콜을 받고, 미국 메이저 TV쇼의 출연자인 존 바티스트(Jon Batiste)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재즈 뮤지션일 텐지만, 이런 유명세는 역으로 그의 음악적 재능을 바라게 했다. 하지만 그가 그 누구보다도 성실한 앨범 활동을 해왔다는 사실조차도 유효타를 날리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전환점을 마련했다. 명문 재즈 레이블인 버브 레코드(Verve Records)에서 창작욕을 분출하기 시작한 것. 그 세 번째 결과물인 [Chronology Of A Dream]은 라이브 앨범이다. 라이브 앨범이 가진 생동감과 순간의 결과물이 담긴 동시에, 라이브라 믿기 어려운 완벽한 합이 담겼다. 그 포문을 여는 ‘BLACCK’에선 재즈에서 말하는 리듬감인 ‘스윙’보다는, 곡의 제목처럼 흑인음악에서의 ‘그루브’가 더 진하게 느껴진다. 이로써 그는 저평가되었던 음악가로서의 역량을 세상에 드러낸다. 그가 펼쳐온 모든 활동의 기반이 어디에 있는지를 새삼 인지하게 한다.


Sweet Insomnia (Feat. 6LACK)

Gallant (Feat. 6LACK)

김정원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 : 한국의 초난강 갈란ㄷ… 아니 아니 갈란트(Gallant)가 오랜만에 돌아왔다. 비록 [Ology]처럼 퓨처 사운드에 올린, 시쳇말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야마'는 없을지라도 이번 앨범 역시 충분히 훌륭하지 않나 싶다. 게다가 근 1, 2년간 최고의 진퉁(?) 알앤비 싱어라 해도 손색이 없는 블랙(6LACK)이 참여한 "Sweet Insomnia"에는 은근한 클래시컬함까지 녹아 있다.


Blue Light (Taylor McFerrin Remix)

Emily King

김현호 (전 A&R) : 몇년 전 우연히 에밀리 킹(Emily King)의 음악을 접했다. 거칠면서도 묘하게 섬세하고, 매끄럽지 않지만 귀에 포근하게 안기는 보컬이 마음에 들었다. 그 후로 날이 점점 추워지거나 햇살이 따뜻해지는 무렵이면 늘 그의 음악을 챙겨 듣는다. 이 곡은 동명의 원곡을 테일러 맥페린(Taylor McFerrin)이 리믹스한 곡이다. 원곡과 크지 않는 간극 사이에 테일러 맥페린의 부드러운 터치가 느껴져서 무척 즐겁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