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트와 친구들

친구들의 취향: 2019. 11.

2019년도 저물어가는 12월, 늦었지만 친구들에게 11월의 취향을 물었다. 이번 글에는 지난 글보다 유독 다양한 장르가 섞여있다. 힙합과 재즈, 케이팝, 애니메이션 OST와 수십년 전의 엔카까지. 우리의 음악 환경은 유행이라는 단어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행이 꼭 우리의 취향을 결정하는 건 아니라는 걸 친구들의 취향을 정리하며 느낀다. 그래서 다음달도 친구들에게 취향을 물어보려고 한다. 아마도 2019년 12월의 취향은 2020년 1월에 올라오겠지만 말이다.

시간의 바깥

IU

이현호 (Bite) : 한동안 연기 활동에 집중하던 IU의 오랜만의 새 앨범이다. 앨범 자체는 비교적 평이한 인상이었지만, '시간의 바깥'은 여전히 우리가 이 아티스트의 음악을 기대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는 곡이다. 8년 전 선보였던 "너랑 나"의 시퀄이라는 특별한 점 외에도 노랫말과 멜로디, 편곡과 가창, 비주얼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IU가 아니면 소화할 수 없을 감각들을 풍부하게 배치해 놓았다. 완성도와 별개로 오직 이 아티스트여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노래, 이런 노래를 더 많이 만나고 싶다.


Grind

Paloalto

김정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 @melo7421) : 대중음악의 대전제가 대중과 공명해야 한다는 것이라면 이 노래는 분명 2019년 한국힙합 트랙 중 최고의 트랙일 것이다. 잘나가는 래퍼들이 은근히 잦은 빈도로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을 깔아뭉갤 때, 수많은 풍파를 겪은 30대 중반의 이 래퍼는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의 삶을 존중할 줄 안다.


Snow (Hey Oh)

Red Hot Chili Peppers

이상훈 (A&R / @your.anr) : 첫눈이 내렸다고 한다. 직접 첫눈을 보진 못했지만 겨울 기분이 부쩍 들게 된 올해 11월을 채운 곡으로 레드핫칠리페퍼스의 Snow (Hey Oh)를 선정하였다. 이 곡이 발매되었던 학부생 시절부터 눈이 올 즈음이면 가장 생각나는 곡이다. 이 곡도 벌써 13년이나 되었다.


Last Supper

D Smoke

김현호 (A&R / @meongtoes) : 누군가 내게 올해의 발견을 뽑으라고 하면 주저 없이 디 스모크의 이름을 쓸 것이다. 디 스모크는 랩에 딱히 결점이 보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명확하게 내뱉는다. 넷플릭스의 ‘리듬 앤 플로우’로 이름을 알리고, 쇼가 종영되는 날 첫 정규 앨범을 내는 치밀함도 갖췄다. “Last Supper”는 ‘리듬 앤 플로우’를 통해 선보인 곡이다. 곳곳에 숨은 펀치라인과 비트의 흐름을 고려한 구성, 후렴을 채우는 ‘eat, smoke, take your time, it’s a long dinner’라는 구절까지, 어느 하나 부족한 점이 없는 곡이다. 사운웨이브가 쓴 곡과 이렇게 찰떡처럼 맞는 래퍼는 켄드릭 라마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11월은 그렇게 디 스모크에 빠져 지냈다.


Umbrella

KARA

띠오리아 (케이팝애티튜드 / @theoria_) : 워낙 명곡이 많은 카라이기에 카라의 음악 중 기억에 남는 곡을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해본 적은 없지만 분명 그 수가 적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카라의 음악 중 가장 좋아하는 한 곡을 고르라고 한다면, 이 곡이 나온 이후로는 언제나 이 곡을 골랐다. 사실 이 곡이 다른 카라의 음악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다거나 내 취향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곡이냐면, 전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어쩐지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비감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이 곡은 템포도 빠르고 스케일도 메이저인데다 주제도 짝사랑인 곡인데 슬플 이유가 없지 않나. 근데 사실 스윗튠의 곡은 뭔가 그런 편이기는 했다. 메이저 스케일의 댄스 음악을 만들어도 막 화창한 곡 같지는 않은 묘한 구석이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다른 스윗튠의 그런 곡들을 들으며 애수를 느낀 적은 없는데, 아직도 이 곡은 그 부분에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다. 이 곡을 너무 좋아해 리믹스해보고 싶어서 여러 번 시도도 해봤었는데, 아카펠라를 추출하거나 구하기가 어렵고 있어도 조악한 수준이어서, 나는 좋은 퀄리티로 하고 싶어서 항상 중도에 포기했다.

구름이 조금 있긴 했지만 그래도 해가 떴던 전날을 생각하면 갑작스러운 비가 내렸던, 11월 24일은 우산이 너무나도 절실했던 날이었다. 그래서 비가 그치고 난 뒤인 그날 밤에도 잠이 들기 전까지 이 곡을 청했었다.


トンボ (3’30” 부터)

ナフナ

Urakkai haruki (연남동 음교익) : 어떤 의미로는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속살의 내음이 아직은 많이 퍼지지 않은 곡, 라훈아의 톰보를 이번 달에 가장 많이 반복하여 들었던 기억이 난다. 비열한 거리와 강진 선생 버전의 곡이 여러모로 친숙하겠으나, 땡벌의 이데아라고 하면 역시 나훈아 선생의 이 버전이리라. 근간은 같되 만듦새의 차이가 듣자마자 태가 났다. 도입부부터 치고 들어오는 일렉기타가 거친 로큰롤의 열기로 태우는 월등한 뽕맛으로 정신을 어지럽게 하고 그 옆에서 슬랩으로 달리는 베이스가 오리엔탈 레어 그루브의 모먼트를 충실하게 채워나가는 구성도 좋은데 전성기 시절의 나훈아 대 선생님의 보컬 또한 그에 지지않는 용호상박으로 내달려나가는 3분간의 피버..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이라던 가사와는 달리 ‘당신이 그렇게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잠자리(톰보)같더라도 나는 당신만을 좋아한다’고 외치는 갱쌍도 싸나이의 순정어린 뽕 그루브를 돌려듣고 있다 보면 이런 작은 즐거움을 굳이 홀로 즐겨야 하나?라는 의문이 드는..그런 와중 이 꼭지의 의뢰를 받아, 이 글을 남긴다.


둘의 대화

윤석철트리오

류희성 (월간 재즈피플 기자 / @jazzperson_ryu_) : 윤석철 트리오가 안테나 뮤직으로 소속을 옮긴 뒤에 내놓은 첫 앨범 [SONGBOOK]. 더 큰 회사에서 그가 얻은 건 무엇일까? 빵빵한 제작지원? 화려한 참여진? 뉴욕의 유명한 녹음 스튜디오에서의 작업? 아니, 한 곡에서 보컬을 더한 안토니오 자네티(Antonio Zenette)를 제외하면 객원 음악가가 없고, 그는 개인 작업실에서 이 앨범을 녹음했다. 그는 더욱 자연스럽고 편한 환경에서 이 앨범을 만들었다. 여느 때처럼 윤석철은 음악에서 가장 즐겁고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인다. 신곡이 다수를 이루지만, ‘여대 앞에 사는 남자’, ‘Love Is Song’ 등 그의 몇몇 인기곡을 새롭게 연주하기도 했다. 이 앨범이 친숙한 것은 그저 귀에 익은 곡이 몇 곡 수록되어서가 아니다. ‘윤트 사운드’라 할 수 있는 음악세계가 이번 앨범에도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둘의 대화’를 추천곡으로 선곡했지만, 이 곡을 듣는다면 결국 앨범 전체를 재생하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 재즈 마니아뿐 아니라 대중적 취향까지 아우를 수 있는 걸작이 또 하나 탄생했다.


xanny

Billie Eilish

깨비참 (작곡가) : 안타까운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Everything I Wanted’와 함께 이 곡을 들으며 심란한 마음을 추스린 덕분에 사건들을 조금씩 뒤돌아 볼 수 있었다. ‘xanny’는 가사와 영상에 파격적인 표현을 더해 확실한 메시지를 전하는 곡이다. 이 곡처럼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곡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 또한 많이 만들고 싶다.


Moonmen Music Video (Feat. Fart and Morty)

Rick and Morty

김용후 (비트메이커 / @yngh.hoodiak) : 병맛 만화 ‘릭 앤 모티’ 중간에 나오는 뜬금없는 노래와 뮤비다. 처음에는 만화의 병맛을 가중시킨다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보고 듣다 보니 병맛 이상의 묘한 끌림이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데이비드 보위로 대변되는 사이키델릭한 사운드가 연상되고, 성우의 오버스러운 연기와 감성 때문에 멜로디도 기억에 생생히 남는다. 게다가 마무리 멘트까지 완벽하다 ‘Shut the f*ck up about Moon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