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DanceD와 2019 한국 힙합 돌아보기

어떤 분야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깊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언제나 존경한다. 속된 말로 '뇌피셜'을 뽐내기보다 하나라도 더 정확하게 알기 위해 애쓰고, 하나라도 더 많이 공유하기 위해 귀한 시간을 주저 없이 투자하는 이들이 우리 시대에는 더 많아져야 한다고 느낀다. 나 역시 창작, 대중문화, 특히 대중음악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만, 시간을 내서 대중음악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한국 힙합을 그 누구보다 애정이 어린 시선으로 기록하고 있는 그분, 여러 한국 힙합 팬과 아티스트에게도 유명한 힙합엘이의 가사 해석 필진 DanceD님께 무작정 한국 힙합 얘기를 나눠 주시기를 부탁드렸다. - 이현호

챕터 1. 근황 &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이현호 : 우선 들어가기에 앞서 DanceD 님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DanceD : 안녕하세요 HIPHOPLE 가사 해석 필진 겸 ‘한국 힙합 프로 리스너’ (?) DanceD입니다.

이현호 : 반갑습니다. 개인적으로도 DanceD님 얼굴을 못 뵌지 꽤 지난 것 같은데, 간단히 근황을 여쭤봐도 될까요.

DanceD : 현재 철원에서 군의관 생활하면서, 취미 아닌 취미 생활인 가사 해석과 인스타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주말엔 본가 가서 폭풍 육아하고… 답변을 드리는 지금은 감기에 걸려있고요. 딸아이는 쑥쑥 크고 있고 아직 아빠보다 엄마를 좋아하지만, 너무 예쁘니까 상관없습니다.

이현호 : 너무 예쁜 건 저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최근에 네이버 나우 오디오쇼 '랩하우스 온에어' 에 게스트로 출연하신다는 소식도 있었는데, 어떤 계기로 나오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DanceD : 힙합엘이의 사장님이시자 네이버 나우 힙합 분야 쇼 제작에 참여하시는 히맨 님이 어느 날 전화가 와서, 이번에 랩하우스 온 에어에서 힙합씬에서 활약하는 비 뮤지션들을 초대하는 코너를 기획 중인데 나와줄 수 있겠냐고 하더라고요.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된다고 했죠. 쇼미 예선 합격한 것마냥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가사해석으로 주목을 많이 받는데 한국 힙합에 공헌한 사람으로 선택되었다는 게 좀 뿌듯했어요.

이현호 : 얘기를 나누는 지금 시점에서는 아직 방송 전인데, 기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또 인스타그램을 통해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라는 시리즈를 매일같이 연재하고 계시죠. 힙합플레이야 커뮤니티에도 함께 올리시는 거로 아는데, 어떤 건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DanceD :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는 제가 원래 힙합플레이야 게시판에 연재했던 앨범 감상 후기 글입니다. 군의관 생활은 그전 생활보다 훨씬 많은 여유를 가져다주는데, 그동안 일하느라 바빠서 못 들었던 앨범을 몰아 들어보자는 생각을 우선 했죠. 밀린 감상이 너무 많았지만 일단 입대 1년 전, 그러니까 2017년 정도부터 해서요. 근데 앨범을 듣고 느낀 것에 대해 수다를 떨고 싶은데 옛날 앨범을 갖고 뜬금없이 게시판에서 뒷북치기도 그렇고, 거기다 앨범이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 도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그래서 그걸 10개씩 모아서 힙합플레이야에 연재글 마냥 게시판에 올리게 된 거예요.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를 연재 중인 DanceD님의 인스타그램.

이현호 : 사실 저도 '들어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시기를 놓쳐 듣지 못한 앨범이 많아 상당히 좋은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힙합엘이 스탭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계신데도 힙합플레이야에 연재를 하신 이유도 궁금했어요.

DanceD : 일단 힙합엘이는 제가 관리자로 있다 보니 함부로 게시판에 무언가를 연재한다는 게 부담이 있었고요, 그렇다고 피쳐를 쓰자니 저의 필력에 대해 자신이 없고… 곧 말하게 될 듯하지만 저는 저의 글에 상당히 자신이 없는 편이거든요. 무엇보다 사람 많은 곳에 반드시 따라올 악플이 너무 두려웠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힙합플레이야에 올리는데… 이게 또 시간이 지나니 제 안에 숨겨진 관종 끼가 스믈스믈 올라오더라고요.

더불어서 힙합플레이야에 올리는 글에는 글씨만 주르르 있는데 사진도 글마다 하나씩 넣으면 좋았겠다 싶어서 어느 매체가 좋을까 하다가, 적당히 사적이면서 또 공적이고, 연재글이면서 또 갤러리 같은 느낌도 들 인스타가 좋겠다 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사실 그전까지는 인스타를 안 하고 있었다가 처음 가입했는데, 생각보다 글쓰기가 좋지 않은 환경이어서 시작하고 나서 곧 후회했던 기억이 있네요… 네이버 블로그에다가 할 걸이라고... 근데 그랬으면 구독(?)하시는 분이 지금보단 적었겠죠. 원래 또 하나 시작하면 제가 중간에 사소하게라도 방향 트는 걸 잘못해서 그냥 인스타로 하고 있습니다.

이현호 : 아무래도 저도 인스타를 통해 많이 보고 있어서, 좋은 선택을 하신 것 같습니다. 글을 쓰시는 양으로 봤을 때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들으시는 것 같은데, 다른 일을 하시면서 꾸준히 들으시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음악 듣는 데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DanceD : 사실 생각만큼 시간을 많이 투자하진 않습니다. 아니, 못하죠. 예전에는 뭘 하든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들었는데, 요즘엔 그거 아니라도 봐야 할 재밌는 영상도 많고… 특히 후기 글을 쓸 정도로 음악을 들으려니, 뭔가를 하면서 듣는 거로는 영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보통 음악 듣는 시간은 출퇴근할 때, 혹은 주말이나 휴가에 근무처에서 서울 왔다 갔다 할 때 차에서 듣는 게 거의 메인이 되고요. 이래도 당연히 부족하기 때문에 출근 후 휴게실이든, 어디 걸어 다닐 때든 틈틈이 듣는 거 같습니다. 뭐 하루의 비율을 따지면 많아 봐야 10~20%일까요? 일할 땐 당연히 못 듣고, 본가로 들어가도 들을 시간이 안 나거든요. 들을 시간은커녕 글 쓸 시간도 안 나서, 고속도 따라 서울로 가다가 이번 후기 글 어떻게 써야겠다! 하고 결정이 나면 갑자기 휴게소나 졸음쉼터로 빠져서 노트북 꺼내서 쓰고 다시 가기도 하고 그럽니다.

듣는 환경이 저는 상당히 안 좋은 편이에요. 제가 듣는 환경 중 가장 좋은 게 아마 자동차에 설치된 BOSE 스피커인 거 같고, 그다음은 Audio-Technika 이어폰, 그다음이 집에 있는 블루스 JBL 스피커인 것 같은데 정작 제일 많이 음악을 듣게 되는 환경은 핸드폰입니다. 사실 애초에 저는 귀가 상당히 둔감한 편이라 좋은 음질 나쁜 음질을 그리 가리지 않는 편이죠. 그런데도 확실히 핸드폰 스피커로 듣는 건 섬세하게 못 듣는다는 게 느껴지긴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들으면 정확한 느낌이 캐치가 안 되는 경우도 있고… 근데 환경을 갖출 만큼의 돈이 없어서 어쩔 순 없습니다.

이현호 : 직업으로 글을 쓰시는 분들도 영감이 떠오른다고 휴게소에 들러 글을 쓰시는 경우는 드물 것 같은데 굉장하시네요. 사실 우리가 뚜렷한 동기 부여, 그러니까 경제적 이익 같은 게 아닌 이상 이런 연재를 꾸준히 하기가 굉장히 힘든데, 상당히 오랜 기간 글을 쓰고 계신 점이 대단합니다. 스스로 느끼는 꾸준함의 이유라던지 혹은 이걸 반드시 해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으신지요.

DanceD : 일단 제가 뭘 하든 간에 시작하면 미친 듯 들고 파는 느낌이 있어요. 가사 해석도 그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해오는 것인 거 같고요. 음악을 듣기 전에 있었던 여러 취미도, 사람들이 보면 덕후라고 부를 정도로 혼자서 파는 편이었습니다. 이 시리즈도 그러다 보니 일단 장기 지속이 되어가는 거 같네요.

근데 사실, 중간에 한 번 시리즈를 끊었던 적이 있어요. 인스타 시작하기 전에 그랬던 거라 힙합플레이야 게시판에서 읽었던 분만 아실 텐데, 말 그대로 이게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인 거잖아요? 작년 어느 날엔가 밀렸던 감상을 정말 싹 다 했던 순간이 있거든요. 그래서 중단하고, 이제는 그냥 편하게 들어야겠다 싶었죠. 근데 그러고 나니 뭔가가 감상에 도로 게을러지고, 시간이 분명 많은데도 ’들어야지 들어야지’만 하고 그냥 미루게 되고, 그런다고 그 시간을 의미 있게 쓴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더군요. 그리고 몇몇 사람들도 다시 안 써주냐고 해서 2019년 들어서 재시작을 한 겁니다. 그 후론 밀렸던 감상을 싹 다 하는데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있어서 이어지고 있단 점도 있군요.

재시작한 시점을 돌아보면 뭔가 저 자신을 반강제로 리스닝의 늪에 던져넣은 거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시리즈를 통해 음악을 접하는 건 꽤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계속하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캐치 되는 정서나 감성이 더 확장된다는 생각도 들었고, 더불어 글솜씨도 나아지는 거 같다고 생각했고요. 마지막으로 쓰면서 즐겁게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 인사 보내주시는 분들도 이 취미 활동을 보람차고 계속하고 싶게 만들어주는 요소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50개마다 올리는 딸 자랑 + 제 앨범에 대한 홍보처 용도가 있기도…

이현호 : 그런 사적인 포스팅을 올리시는 것도 50개마다 딱 떨어지게 올리시는 게 굉장히 이과적 마인드라는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또 글을 읽다 보면 필력도 상당히 좋으시다고 느껴집니다. 단순히 감상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좋은 글’ 혹은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나요.

DanceD : 위에서도 말했지만 저는 제 필력에 대해선 자신이 많이 없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봐주신다니 황송할 따름이네요. 우선 저는 이 시리즈에서 제 글을 절대 ’리뷰’라 부르지 않아요. 리뷰라고 하기엔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 시리즈의 모토가 있어요. 우리가 곡을 듣고 ‘오 짱이다’ 혹은 ‘으 구려’ 라고 남기는 간단한 리플들, 그 리플의 궁극 진화형이 되자(?)는 겁니다. 즉 저의 감상은 한없이 평범하고 근본이 없는, ‘가장 많은 형태의 감상’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러면서 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근거 달기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곡을 조금만 듣고도 '좋다' 아니면 '나쁘다'는 얘기하는데, 그 이유를 물으면 답을 못해요. 오히려 ’구린 걸 구리다 하는데 왜?!’라고 역정을 내기 일쑤죠. 제가 오만하게 누군가를 가르치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게 써서는 전혀 뮤지션들에게도 도움이 안 될 거로 생각했기에, 늘 제가 좋다, 싫다라고 느꼈을 때는 그 근거를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건, 그 근거의 대부분은 주관적인 데에 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공감 불가능한 것이 많을 거란 점이죠. 그런 한계를 인식하고, 솔직하되 조심스럽게 글로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한 가지 더 주력하는 부분이라면, 좋은 앨범의 단점과 나쁜 앨범의 장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는 겁니다. 저는 어떤 앨범이라도 장점과 단점은 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완벽하다는 표현은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게 제 의견이에요. 그래서 좋았던 만큼 나쁘게 들릴 수 있는 부분은 뭘까 생각해보고, 반대로 싫었던 만큼 그래도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뭘까 짚어봅니다. 뭐, 실패할 때가 많죠. 그래도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글이 되지 않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이현호 : 간단하게 설명하셨지만 어떤 작품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살펴본다는 게 역시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려움을 느끼실 때는 없나요.

DanceD : 저는 전문적인 지식이 많이 부족한 편이라 평론지의 리뷰 글처럼 탄탄한 글을 못 써요. 예를 들어 저는 서사무엘의 최근 앨범을 얘기할 때, D’Angelo 음악을 잘 몰랐기 때문에, 아니 아예 “네오 소울”이란 단어를 잘 몰랐기 때문에 관련된 글과 음악을 찾아보면서 썼어요 - 그러나 한정적인 시간에 아주 짧게, 수박 겉껍질도 아니고 거의 주변 공기 정도만 건드리고 돌아온 거죠. 이런 예는 수없이 많아요. 몇몇 글은 진짜 “무슨 말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수준인 걸 아마 보셨을걸요?

또 저는 거듭 말하지만 붐뱁충이라고 불리기 주저하지 않는 붐뱁 장르의 매니아라서, ’반대편’에 있다고 할만한 장르, 즉 트랩이나 이모 힙합곡을 들을 때 이게 어떤 면에서 좋은가를 완벽하게 말하지 못해요. 아니 아예 랩에서 벗어나서 인스트루멘털이나 R&B 같은 경우는 귀가 섬세하지 못하다 보니 정말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최근에도 이런 부분에선 글을 거의 못 쓰고 ‘좋다’ ‘싫다’ 수준만 말하고 후다닥 도망치기도 합니다. 제대로 배우고는 싶은데 쉽지 않더라고요, 타고 나는 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제 글을 좋아한다면 아마, 위에서 말했듯 퀄리티보다는 ’가장 많은 형태의 감상’에 기초하여 쓰기 때문에 공감이 되어서 그러지 않을까 싶네요.

이현호 : 앨범 감상뿐만 아니라 한국 힙합 관련 인터뷰나 영상 콘텐츠도 거의 다 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냥 재미 때문인지, 아니면 어떤 학문적인 호기심, 그러니까 ’하나라도 더 알고 싶다!’라는 마음인 건지 궁금합니다.

DanceD : 우선 가사 해석할 때는 꼭 영상 같은 걸 하나 틀고서 하는 편인데 그럴 때 흥미 가는 영상을 하나씩 틀면서 보게 되는 거 같아요. 그런데 꼭 음악 관련은 아닙니다. 저도 딴 유튜브 영상도 많이 봅니다.

학문적인 호기심이라는 게 꽤 어울리는 맞는 말이네요. 저는 제가 ’음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론적으론 잘 모르지만, 뮤지션과 앨범에 대해 공부하듯이 듣고 싶어요. 그래서 뮤지션들의 여러 가지를 알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는 거죠. 특히 모르던 아티스트라면 그의 커리어나 소속 크루, 활동 방향 같은 걸 알 수 있는 정보가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확실히, 생각을 알면 앨범의 숨어있던 요소가 더 와닿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뷰 같은 걸 많이 찾게 되고, 사실 일상을 담은 요소들은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VLOG나 인스타 라이브, 그냥 인스타 자체는 거의 보는 경우가 없어요.

이현호 : 오랫동안 연재를 하시면서 아티스트분들께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은 적도 있나요?

DanceD : 종종 있어요. 뭐 좋아요 눌러주시는 아티스트분들도 있긴 한데… 좋아요는 솔직히 해시태그로 검색해서 반사적으로 누르는 것일 거라 생각해서 큰 관심은 없고 Ignito, Horim, Basick 등의 뮤지션분들의 리플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인스타 스토리에 소개해주시는 경우도 있고, 노출 기회가 적은 분들은 제게 감사하다고 DM을 해주시기도 하죠. 구체적으로 ’피드백’이란 단어에 맞춰보면 최근에 Loxx Punkman 님이 제 글에 대해서 조금 미흡해 보였던 부분에 대해 부연 설명해주는 DM을 보내주신 적 있습니다. 다행히 화기애애한 분위기였고, 정말 다행히도 야단(?)을 아직 맞은 적은 없습니다.


챕터 2. 2019 한국힙합

이현호 : 이제부터는 2019년의 한국 힙합을 되짚어 볼까 하는데요. 우선 가벼운 얘기부터 해 볼까요. 요즘 가장 자주 듣는 노래나 음반이 있으신가요.

DanceD : 솔직히 말하면, 저 밀.감.싹. 프로젝트 때문에 하나를 진득하니 듣지 못한지 좀 된 편입니다. 하나를 돌리다 보면 다음 앨범 들을 시간이 줄어들고,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있으니… 시리즈 연재의 대표적인 폐해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답변 당시) 그냥노창의 최근 앨범을 듣는데… 좀 아득한 느낌입니다.

질문을 약간 바꾸어서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면 자주 들을 앨범’이 뭐냐 라고 묻는다면 아마 C Jamm의 “킁”과 Kid Milli의 “L I F E”일 거 같군요. 그거랑 아이유 이번 앨범… 그리고 일단은 백예린 “Square”만.

한국에서 힙합을 가장 열심히 듣는 DanceD님은 자유롭게 음악 들을 시간이 생긴다면 아이유와 백예린을 듣겠노라 말씀하셨다...

이현호 : 의외네요. 순수히 좋아서 앨범이나 곡을 돌려 듣는 형태의 감상을 하실 시간은 많지 않은 상황이신 거네요. 꾸준한 연재 뒤에 이런 희생이 있을 줄은… 아무튼 그만큼 누구보다 한국 힙합 앨범을 열심히 듣고 계시지 않나 싶은데, 올해 한국 힙합을 전반적으로 정리하자면 어떤 느낌이셨는지 궁금합니다.

DanceD : 2019년은 제가 한국 힙합 팬이 된 이후로 가장 역동적인 해가 아니었나 싶어요. 기본적으로 밀렸던 감상을 아직도 따라잡지 못했다는 게 그걸 잘 보여주는 거 같네요.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후반기가 인상적이었죠. 그 열기가 해가 바뀌려는 지금도 아직 안 식었으니!

가장 눈에 띄게 음악 장르의 저변이 넓어진 해도 올해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Uneducated Kid의 성공이 상당히 눈에 띄죠. 머니 스웩 이상의 비현실적인(?) 스웩을 한국에 가져와서 성공했으니까요. 그런가 하면 반대쪽으로는 XXX의 성공이 있었고요. C Jamm의 변신 성공도 언급해야 할 거 같아요.

이현호 : 사운드 측면에서는 어땠을까요. 올해도 싱잉 랩의 강세가 이어졌지만, 팔로알토나 사이먼 도미닉 등 오랜 경력의 래퍼들이 보여준 랩 퍼포먼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DanceD님도 직접 소개에 붐뱁충이라고 적어놓으실 정도로 클래식한 랩에 대한 애착이 있으신 것 같은데, 올 한 해 동안 한국 힙합에서 사운드 적으로 특별히 느낀 점이 있으신가요.

DanceD : 말했던 대로 정말 다양한 음악이 나와서 정말 좋아요. 과거 제가 생각하던 한국 힙합씬에 대한 불만은 정말 너무 잘 휘둘린다는 점이었어요. 사우스 힙합이 나오자 모두가 스트링 세션 빵빵한 음악 위에 비장한 랩을 해대고, Cohort 크루가 뜨자 모두가 단조롭고 미니멀한 비트로 돌아갔죠. 어느 때부턴가는 모두가 오토튠을 깔고 노래를 하고 있고, 또 돈 자랑을 하기 시작했죠. 미국 힙합씬을 봐요. Migos가 성공한다고 Jay-Z나 Nas가 트랩을 하지는 않는단 말이죠. 건강한 힙합씬은 양극단의 음악이 공존하고 또 각자가 성공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젠 확실히 그 추세가 이루어진 거 같아요. 물론 아직 트렌드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한 거 같지만, 나오는 래퍼들이 저마다의 스타일로 노래할 수 있게 된 건 아주 고무적인 거 같아요.

이현호 : 쇼미더머니 이야기를 잠깐 해 볼까요. 쇼미더머니 8이 올해 방송됐지만, 반응도 예전처럼 뜨겁지는 않았고, 최근 엠넷 오디션에 관한 각종 논란과 맞물려 아마 내년에는 방송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습니다. DanceD님은 쇼미더머니 8도 꾸준히 시청하셨나요? 이제는 더 이상 쇼미더머니에 출연한다고 랩스타가 되기는 힘든 것 같은데, 2019년 현재 쇼미더머니의 의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DanceD : 2019년은 쇼미더머니가 지는 해가 되었다는 점이 참 뜻깊은(?) 것 같습니다. 뭐 제가 쇼미더머니의 몰락을 빌면서 지냈다는 그런 점은 아니에요. 저도 쇼미더머니 전 시즌 전 회를 챙겨본 사람이거든요.

한때는 쇼미더머니랑 한국 힙합씬의 성공을 따로 떼놓고 얘기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어요. 누군가는 쇼미더머니 노래가 대중적으로도 히트하면서 드디어 힙합의 대중화 시대가 왔다고 얘기하기도 했죠.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아무리 좋게 봐줘야 ‘비인기 종목의 반짝인기’ 정도로밖에 생각이 들지 않아요. 힙합씬을 띄워주려면 발판이 되어줄 뭔가 필요했는데, 사실 쇼미더머니도 참가자들을 발판으로 생각하고 있던 게 문제 같아요. 시청률을 뽑아먹기 위해 참 열심히 노력들을 하셨죠. 그리고 문제는 거기에 목맬 수 밖에 없는 좁은 구조. 이게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은 성공의 규모 등등. 방송할 때는 재미있었지만 방송이 끝나고 나서 모두 숙취만 심했던, 별로 좋지 않은 현상이었던 거 같아요.

전 시즌 8의 의의를 크게 봅니다. 처음으로 쇼미더머니가 작아 보였던 해거든요. 참가에 관심을 둔 사람이 별로 없었고, 우승자와 우승 곡에 쏟아지는 시선도 적었죠. 오히려 중간 탈락자들에게 관심이 더욱 많이 갔던 시즌이죠. 그리고 비록 성공 규모는 상대적으로 미미하겠지만 “수퍼비의 랩 학원”이라던가 “싸인히어” 같은 대항마가 나오기도 했어요. 최종적으로, 쇼미더머니가 더 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만, 씬에 그저 작은 이벤트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 저는 좋아 보이더군요.

우리가 예를 들어, 토익이나 토플이 큰 시험이지만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인생이 바뀌진 않잖아요. 쇼미더머니도 그런 느낌으로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많은 루키들이 원하는 성공이 발현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져야겠죠. “수퍼비의 랩 학원” “싸인히어” 같은 오디션 창구도 많아지고, “랩하우스” 같은 다양한 참여진이 등장하는 공연도 많아지고, 퀄리티 있는 앨범 제작도 꾸준히 이뤄져야 할 거에요.

싸인히어는 '쇼미더머니'와는 어울리지 않는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현호 : 다행스러운 점은 딩고 프리스타일이나, 마이크 스웨거, 네이버 나우 등 쇼미더머니 외에도 힙합 팬들이 열광할 수 있는 콘텐츠들이 다양하게 제작되고 관심을 끌고 있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DanceD : 언뜻 힙합엘이에서 2010년대 초에 힙합 토크 콘서트를 했는데, 그때 힙합엘이에 있으면서 콘서트를 기획했던 스탭분이 ’언더그라운드 씬은 더 재밌어질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던 게 기억나네요. 그런 재미를 더해주는 데 아주 쏠쏠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제가 다 보는 거 같다고 했지만 사실 저 역시도 인기 있는 영상에 휘둘릴 뿐입니다. 실제로 아마추어 시장에서는 아마추어 힙합 아티스트들을 프로모션하고자 생각보다 많은 콘텐츠가 나오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들은 아쉽게도 손이 안 가더라고요. 제가 아프리카TV나 팟캐스트 같은 건 안 쓰고 오직 유튜브만 보는 까닭도 있긴 하지만요.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딩고, 네이버 나우, 그리고 국힙상담소, 내일의 숙취 같은 걸 제작하는 힙합플레이야, 그리고 MIC SWG 등 다채로운 영상 시리즈가, 뭔가 비주류 문화의 팬이지만 그리 외롭지는 않아졌단 생각이 들게 하는 거 같습니다.

특히 저는 2000년대 중반 힙플라디오를 기억하는 세대로써 네이버 나우 라디오가 상당히 반갑습니다. 특히 하는 일이 영상에 항상 집중할 수 없는 형태다 보니 귀로만 듣는 게 좋을 때가 있거든요. 최근 Crush가, DJ가 직접 곡을 선곡하여 들려줄 기회가 있다는 게 정말 좋은 거 같다고 자기 방송 “Crush네 Vinyl봉지”에서 얘기했는데, 맞는 거 같아요. 저는 또 더 배워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네이버 나우는 다시 듣기 좀 만들어줬으면…

이현호 : 그래도 네이버 나우에서 최근에 실시간 채팅 등의 기능을 추가하고 계셔서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음악이나 콘텐츠 외에 힙합씬 전체에서 올해 느껴졌던 변화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비해 각 레이블 또는 크루들이 가지는 의미가 올해는 좀 많이 약해졌다는 인상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기리보이나 창모는 차트에서도 선전했지만, 저스트뮤직의 기리보이, 앰비션 뮤직의 창모라는 느낌보다 그냥 그 아티스트로서 주목받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DanceD : 글쎄요, 국힙상담소에서 The Quiett이 했던 말 중에, 우리나라가 너무 레이블을 크루처럼 받아들인단 말이 있었죠. 저는 뭐 그것도 듣는 재미를 부가시켜주는 요소라고 생각해서 문제점이라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저스트 뮤직의 기리보이가 저스트 뮤직의 기리보이가 아니라 그냥 기리보이라고 해서 딱히 다르게 볼 건 없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아티스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터치 없이 해왔던 거고, 그래서 힙합 레이블이 대중연예기획사랑 다른 거잖아요.

레이블 얘기하니까 생각나는데 올해는 레이블들의 지각 변동도 꽤 심했던 거 같아요. 저는 연초만 해도 스윙스 천하가 이어질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IMJMWDP 사단에 사건 사고가 컸어요. 그 사이 박재범 사단이 더더욱 크기를 불렸고, 앰비션 뮤직도 3인 구조 - 이게 결국 ‘크루 같은’ 혹은 그냥 ’힙합 그룹 같은 레이블’의 예가 되었을 수 있는 거죠 - 중 하나로 남을 뻔하다 성공적으로 회사의 모습을 갖춘 거 같네요. Hi-Lite도 드디어 Cohort를 벗어나 성공적으로 새 모습을 갖춰가는 거 같고요. 예전에 힙합 들을 때는 거의 2~3개의 레이블이 독식하는 형태였는데, 현재는 여러 레이블이 언급되거니와, 아예 레이블이 없는 아티스트들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어서 바람직한 거 같네요.

이현호 : 잠시 벗어난 이야기를 해 보자면 해외 음악도 꾸준히 들으실 텐데, 올해 해외의 힙합 음악에 대해서도 느낀 점이 있으신가요.

DanceD : 해외 힙합은 제가 생각보다 잘 안 듣습니다. 그래서 뭐라 해야 할지… 제가 올해 궁금하던 건 사람들이 진짜 “Old Town Road”가 좋아서 저렇게 빌보드에 오래 있는 걸까, Lizzo와 Post Malone이 저렇게 좋은 건가… 하는 거였네요.

친구한테 반 농담으로 그런 적 있는데, 저기 빌보드에 있는 힙합 R&B 아티스트들, 우리가 흑인 음악 매니아니까 예술가로 보이지만 쟤네들이 저곳의 방탄소년단이고 싸이고 다이나믹 듀오인 거라고… 즉 그들은 가요를 하고 있는 거고 그게 우연히 우리 취향과 맞는 거라고... 생각보다 미국 음악씬도 경직된 부분이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을 더러 합니다. 근데 제가 이해도가 깊지 않거니와, 작품성 있는 작업물은 계속 쏟아져나오고 있기 때문에 강하게 주장하진 않겠습니다.

이현호 : 2020년을 맞이해 지난 10년에 대한 의견도 한번 여쭤보고 싶은데요.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힙합의 위상은, 그 전 10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여기에 댄스디님의 가사 번역을 비롯한 콘텐츠가 크게 이바지했다고 말씀하시기도 하고요. 그만큼 오랫동안 이 씬에 여러 가지로 에너지를 주고 계시는데, 지난 10년에 대한 어떤 소회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DanceD : 와, 10년이요. 최근 10년 치 결산이 유행이던데, 저는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올해의 TOP 10을 뽑는 것도 어려울 거 같은데 10년이라… 한 2주 정도 시간을 주시고 TOP 50으로 뽑는다면 해볼 수는 있을 거 같아요.

2000년에서 2010년의 변화에 비해 근 10년의 변화는 정말 눈이 부실 정도인 거 같아요. 가장 큰 건 붐뱁 위주의 음악씬에서 다양한 장르가 각자의 영역을 구축했다는 것. 물론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죠. 2011년에 Illionaire Records가 처음 등장했을 때, 누가 머니 스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거라고 예상했을까요. 다들 한국 정서 얘기하면서, 거만한 모습 보이지 말라고 배척하는 분위기였잖아요. 그런가 하면 서서히 노래에 오토튠을 섞고 노래를 하기 시작할 때. 약 얘기를 하고 우울증 얘기를 하기 시작할 때… 그런 것들이 저마다 하나씩 자리를 만들었어요. 저는 언제까지나 옛날, 제가 처음 들었던 힙합에 기반을 둔 붐뱁 장르의 열렬한 팬이지만, 씬의 다양성은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서 아주 마음에 듭니다.

DC트라이브에선가, 이런 리플을 본 적이 있어요. 미국 힙합은 원래 노장 래퍼들부터가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오래 살아남는 거고, 한국 힙합 1세대는 그냥 희소성 때문에 잘 된 거라 이제 와서 낄 자리가 없는 거다. 고질적인 떡밥은 1세대 리스펙 문제에서 나온 문제인데, 조금 모욕적이고 공격적인 발언이기는 하지만 얼추 어떤 의미인지는 알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이제는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이들이 건재한 기둥으로 자리하고, 다른 이들을 서포트하면서 대부라는 대접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다시 씬의 성장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우리도 이제 ’역사적 인물’이 생겼달까?

Illionaire Records의 등장과 성공은 지난 10년간 한국 힙합의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이현호 : 한국 힙합이 규모 측면에서 많이 성장한 반면에, 음악적으로는 아직도 외국 힙합의 답습에 그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DanceD : 힙합 자체가 미국의 것이니 아마 끝까지 떼어놓을 수 없는 꼬리표일 겁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이 미국에서 만들어지면, 한국에도 빠르게 유입되어서 거기서부터 아류가 생겨나곤 했죠. 이모 힙합, 멈블 랩, 트랩, 아니 그 위로 올라가 사우스 힙합, 클럽튠 등등 유행이 뭐냐에 따라서 항상 그래왔으니까요.

우선 첫 번째로, 아류가 되는 것이 과연 금기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좀 과감하죠? 당연히 오리지널이 카피캣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건 반박의 여지가 없지만, 맨땅에 헤딩으로 오리지널이 만들어지는 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미국에서 오리지널이 몇 배는 더 나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땅 크기 인구수가 그 정도면 자연스럽게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 네, 필사의 쉴드였습니다.

이현호 :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오리지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깊이 논의하자면 책 몇 권을 써야 하겠지만요.

DanceD : 중요한 건 아류에 머물지 않고 거기서 더 발전해나가는 겁니다. 우리만의 색깔을 거기에 입혀 개량해나가는 거죠. 예전에 친구가 왜 외국 힙합이 오리지널인데 안 듣고 한국 힙합을 듣냐고 해서 제가 역시 반 농담으로 ’거기에 고3후기 같은 내용의 노래 있으면 들을게’라고 답한 적이 있어요. 미국의 총과 마약이 판치는 빈민가와 한국의 수험 생활, 취준생 등의 경쟁 사회는 너무나 다르다 보니, 그들이 그려내는 얘기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힙합의 위상마저 다르다 보니, 미국에서는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한국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가 더 많죠.

’서사’를 취급하는 방식도 달라요. 우리나라의 명작이라 불리는 앨범은 한 권의 소설 같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 “The Anecdote” “녹색이념” “밭” 등등… 그런데 미국에선 갤러리 같은 앨범이 많아요. 그래서 곡 수가 엄청 많죠. 뭐랄까, 병렬식 구성이라고 하면 맞을까요? 그냥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계속 보여주는 겁니다. 당연히 서로의 케이스에도 반대되는 경우는 있어요. Kendrick Lamar의 앨범의 서사를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죠. 그저 추세를 말하는 겁니다.

이런 추세의 영향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건, 같은 장르를 줘도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 더 발전하면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치게 되죠. 저는 STAREX 크루로 대표되는 ’카와이 트랩’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트랩이 미국에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참 한국적인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혹은 Justhis의 “씹쌔끼” 같은 날것의 분노가 흑인 곡에서 나올까요? 아니 더 나아가 한국 특유의 감성 발라드 힙합은 어떤가요. 우리 대부분은 이건 힙합이 아니라며 부정하는데, 전 그게 아니라 그냥 한국적으로 진화한 형태라고 생각해요. 그냥 취향에서 너무 멀어져서 그런 말을 할 뿐, 오히려 미국 힙합보다는 훨씬 공감하기 쉬운 형태의 음악이에요.

예전에 한국 새 아티스트가 나오면, 뭔가 죄를 짓지 않으려는 마음처럼 ’이 사람과 비슷한 외국 아티스트는 누구죠?’라는 질문이 늘 따라붙던 때가 있었어요. 저는 이제는 그런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수 없는 아티스트가 충분히 많이 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아티스트를 보며 자랄 새로운 루키들도 많이 준비되어있고요. 앞으로도 여전히 카피캣 논란, 아류 논란은 계속 생길 거에요. 딴 데서 새로운 게 나왔는데, 같은 걸 할 수 없다고 내버려 두기엔 너무 좋고 매력적일 거거든요. 허나 시간이 지나면 거기서 또 예상치 못한 열매가 맺혀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리스너는 그냥 여유를 갖고 지켜보면 돼요.

오직 한국인만 눈물 흘릴 수 있는 그 곡.

이현호 : 쇼미더머니의 인기가 식고 힙합씬의 폭발적인 성장도 주춤해지면서, 한국 힙합에 다시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많이 있습니다. 댄스디님은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DanceD : 앞에서 말했듯 쇼미더머니의 위상은 이미 아주 작아졌어요. 그리고 쇼미더머니의 우승자가 랩스타가 아니라는 사실도 많이들 깨닫게 되었죠. 7 이후의 상황에서는 쇼미더머니가 사라진다 = 한국 힙합의 위기다 라는 말이 신빙성 있었지만, 시즌 8이 진행되면서는 별로 그런 걱정이 안 들더군요.

말했지만 우리에겐 많은 표현 창구가 필요한 겁니다. 쇼미더머니만이 그 표현, 그러니까 사람들을 향해서 ’이런 스타가 있다! 이런 신인이 있다!’라고 알리던 창구였다가 닫혀버리면, 힙합씬은 꽁꽁 갇혀버리겠지만, 다소 크기가 작아도 “싸인히어” “수퍼비의 랩 학원” “랩하우스” “딩고 프리스타일” “Boiling Point” 등의 다양한 창구가 생겨나고 있다고 봐요.

상대적으로 이런 창구를 찾기 힘든 신인들에 대한, 기존 ’성공한 이들’의 서포트가 중요한 거 같습니다. 지금 확실히 쇼미더머니가 남긴 피해 중 비관적인 거라면 이런 서포트 구조가 기형적으로 틀어져 거의 씨가 말랐다는 점입니다. 홍대 단체 공연이 사라졌다는 게 그렇고, 레이블에서도 오디션을 통해 뜬 신인들만을 데려가곤 했잖아요. 이 중간 다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해요. 현재보다도 많은 창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직까진 고무적이라 생각해요. 근데 조금 조심스러운 태도를 갑자기 취하자면, 저번 쇼미가 끝나고 아직 몇 달 밖에 안 되었으니까 이게 장기 지속할지는 봐야 할 거 같아요. 현재처럼만 가면 그래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싶긴 한데…

이현호 : 2020년의 한국 힙합은 어떤 모습일까요. 특별히 기대하고 계신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The Quiett, Deepflow, 넉살, Epik High 등 올해 정규앨범 소식이 없었던 아티스트들의 신보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DanceD : 아 물론 그런 아티스트들의 새 앨범도 다 나와야겠죠. 기리보이가 최근 인터뷰에서 그랬던데요, ’허슬을 안 하면 안 되는 시대가 온 거 같다’라고. 실력은 있지만 모습을 숨긴 아티스트들에 대해 최소한의 믿음은 남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가 확실히 늘었어요. 10년 전에는 Sean2slow같은 분들이 앨범 한 장 없이도 베스트 래퍼 리스트에 항상 들 수 있었는데, 이젠 그런 경우는 없죠.

2010년대 초반에는 국내 힙합씬이 거품이 많이 껴있다고 생각했어요. 양적으론 분명 많이 늘었는데 너무 비슷비슷하고 내실이 약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제는 그 내실이 채워지고 단단해져 가는 거 같아요. 밀.감.싹. 프로젝트를 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아티스트가 자기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들이 좀 더 자리를 구축하고 이름을 알릴 2020년은 일단 무쌍 시대이지 않을까요? 근데 역으로 말하면, 이 수많은 루키들, 자작 녹음 게시판을 메우는 아마추어들, 오디션으로 쏟아져나온 열망에 가득 찬 이들을 누가 어떻게 거둘 것인지가 과제이긴 하네요. 뭔가 비관적인 말을 하나 보태면, 어느 순간 과포화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순간순간 해요. 모두에게 성공의 자리는 있을까? 이런 것… 일단은 근거 없는 불안인 거니까 두고 봐야죠.

하나 구체적으로 기대하는 부분은, IMJMWDP 사단의 귀환. 이들에 대해서 엄청 팬이라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고, 그저 올해는 뒷심이 좀 부족했던 거 같아요. 낸다는 앨범도 미뤄지거나 잘 안 터지고, 멤버들도 많이 빠지고, 사건 사고가 너무 잦고… 레이블 세 개를 합친 거 치고는 규모도 전처럼 위협적이지 않아 보이는 게 솔직한 심정이에요. 다시 화려한 귀환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현호 : 알겠습니다. 여러 가지 말씀을 해 주셨는데, 마지막으로 한국 힙합 리스너의 한 명으로서, 한국의 리스너분들께도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DanceD : 감히 남에게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할 위치도 아니고, 저보다 뛰어나신 분들이 많습니다만, 제가 느끼기로는 리스너들은 좀 더 한국 힙합에 대한 애정을 표할 필요가 있는 거 같습니다. 인터넷 문화 자체와 깊은 연관이 있지만, 사람들은 뮤지션들에 대해서 진상품을 ‘바쳐야 할’ 아래 사람처럼 생각하는 게 없잖아 있는 거 같아요. 뮤지션과 리스너의 관계는 상하 관계가 아닙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음악이고 우리는 그들에게 관심이라는 선물을 주는 것이죠.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언정 그 마음을 고려한다면 상대를 함부로 대할 순 없을 거예요. 누구도 당신에게 그 노래를 들으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따뜻한 관심을 기반으로 음악을 즐겨주세요.

이현호 : 좋은 말씀입니다. 특히 저는 인터뷰를 많이 작업하면서 느끼지만, 아티스트나 팬이 서로간에 좋은 영향이나 의미를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가장 멋진 관계인 것 같아요. 긴 시간 내주신 DanceD님 감사합니다.


챕터 3. 2019 한국힙합 베스트

댄스디가 꼽는 올해의 앨범

C Jamm [킁]

DanceD : 좋은 앨범이 여러 개 나왔지만, 스타일의 변신을, 그것도 아주 멋지고 기깔나게 해냈으며 이후 주변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는 데에서 올해의 앨범이라 뽑을 만 한 거 같습니다.


댄스디가 꼽는 올해의 노래

다모임 - Forever 84

DanceD : 솔직히 이 부분이 네 개 중 제일 어려웠습니다. 앨범도 베스트를 꼽기 어려운데 노래로 하려니... 파급력이나 아티스트의 네임 밸류 등을 고려해서 "Forever 84"를 뽑았는데, 이외에도 정말 많은 곡을 언급하고 싶었고, 동시에 아무 곡도 뽑지 않고 싶었다는 걸 이해해주시길...;


댄스디가 꼽는 올해의 아티스트

염따

DanceD : 이건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올해의 앨범처럼 C Jamm을 뽑아야 하나 하다가, 활동이 분주했던 부분에서 약간 딸린다고 생각해서... 반대로 염따는 올해 초 '살아숨셔 2'를 낸 후에는 아직 앨범 단위의 활동은 없어서 음악적 커리어의 규모는 작아 보이지만, 올해의 신세 역전, 확실한 캐릭터 세팅 및 다모임을 비롯한 딩고 콘텐츠와 후배에 대한 서포트 등등, 올해 가장 씬에서 존재감이 큰 캐릭터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조금 사소하지만 쇼미더머니에 참여한 적 없이 성공한 아티스트란 점도 포인트고요. (쇼미더머니 참가자에 대한 악감정은 없어요 물론)


댄스디가 꼽는 올해의 신인

안병웅, Uneducated Kid

DanceD : 이게 좀 어렵더라고요. 신인의 기준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 씬에 첫 등장, 아니면 첫 앨범, 아니면 첫 유명인사(?) 이런 건데...

우선 씬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은 아마 아무도 제대로 캐치를 못 할 거 같으니 넘어가고, 첫 앨범으로는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열심히 뒤져본 바로는 첫 믹테 "Bartoon: 36"을 올해 7월에 낸 안병웅이 제일 가까우려나요? 나름 개성적인 스타일을 들고 기대주로 올라섰으니. 하지만 아직 증명할 게 너무 많이 남아있고, 우려되는 부분도 있어서... 고르고 고르다 나온 답입니다.

처음으로 유명인사가 된 이들 중에 고르라면 Uneducated Kid일 거 같군요 (첫 앨범은 작년인가에 나왔죠). 커리어 적으로는 좀 뒷심이 부족해 보였고 아직 증명할 게 남아있지만, 그의 뻔뻔한 컨셉이 씬에 남긴 충격과 끼친 영향은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았나 싶습니다.

후반부에 데뷔해서 좀 애매해서 안 꼽았는데, Mushvenom도 인상적인 신인이긴 했습니다.


댄스디가 꼽는 주목할만한 아티스트

1. IndEgo Aid

DanceD : '파란 외계인'이란 특이한 컨셉 하에 랩하는 뮤지션입니다. 가장 최근 나온 앨범 "E.O.P."는 지난 앨범 및 곡들에 비해 우주 수준으로 넓어진 작품 세계를 보여줍니다. 야망이 큰 만큼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2. truz

DanceD : 아무런 정보 없이 올해 첫 앨범 "365PDS"를 낸 래퍼인데, 쌩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완성도의 붐뱁 앨범입니다. 프로듀싱도 하는데 그 프로듀싱 느낌도 대단히 탄탄해요. 앨범 디럭스 버전으로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훨씬 많이 이름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3. 이도 더 나블라

DanceD : 아직 고등학생의 나이인데 아마 씬에서 제일 난해한 음악을 할듯한 래퍼입니다. 올해 나온 두 번째 믹스테입 "중독"은 제가 들어본 가장 충격적인 앨범 중 손에 꼽힙니다. 프로듀서 Jasin과 조직한 그룹 "흠"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아직 어린 나이다 보니 흔들리는 모습이 좀 있지만, 포텐셜은 어마어마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4. Logi

DanceD : 살짝 인맥으로 밀어보는... 퓨쳐 베이스 기반의 감각적인 음악을 하는데, 살짝 자기 복제가 있어 보이지만 우직하게 발전해가고 있는 래퍼입니다. 아직 앨범이 없이 싱글만 내고 있는 건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만, 앨범을 낼 수 있도록 많은 서포트를 받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5. BadMax

DanceD : nmnb 크루나 Siggie Feb, Brwn 앨범 등에서 이름이 자주 보이는 프로듀서입니다. 트랩 기반으로 때론 전형적이지만 하나씩 뻔하지 않은 포인트를 집어넣고, 그 외에 붐뱁이나 R&B 같은 다양한 스펙트럼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앨범 듣다가 오 이 비트는 나쁘지 않네 하고 찾아보면 이름이 보인달까요? 조금 더 주목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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