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트와 친구들

친구들의 취향: 2020. 04.

바이트의 친구들에게 4월 한 달 동안 가장 좋아했던 음악은 무엇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각자 다른 서로의 취향을 만나보자.

OPENING CEREMONY

MUSHVENOM

이현호 (Bite) : MUSHVENOM이라는 아티스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mnet <SHOW ME THE MONEY 888> 출연을 통해서였다. 독특한 느낌의 랩과 가사는 큰 이슈를 많이 낳지 못했던 <SHOW ME THE MONEY 888>에서 볼 수 있었던 가장 인상적인 무대 중 하나였지만, 사실 이 아티스트에 대해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다.
그 다음 그의 영상이 이목을 끌었던 순간은 NAVER의 오디오 쇼 <RAPHOUSE ON AIR>에서 보여준 라이브 영상이었다. 베테랑 래퍼들을 앞에 두고 다양한 재주(?)를 선보이며 이어가는 그의 랩은 이 아티스트가 얼마나 탄탄한 기본기를 가진 아티스트인지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때 선보인 곡 역시 <SHOW ME THE MONEY 888>에서 보여준 곡의 연장선에 불과했고, 그가 좁은 컨셉의 영역을 넘어설 수 있는 아티스트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MUSHVENOM이 또 한 번의 이슈를 만들어 냈다. 이번에는 좀 더 세계적이다. 그의 싱글이 아닌 게임 'TFT Mobile'의 광고 음악으로 해외 게이머들에게 입소문을 탄 것이다. 이 게임을 해본 적은 없는 탓에 정확히 어떤 맥락의 곡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장기인 꾸짖는듯한 랩과 어우러진 이 강렬한 CM송은 해외 게이머들에게 'DUDUDUNGA'로 불리며 세계의 게임 팬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 인기에 화답하듯 그는 이 곡을 개사해 LCK라는 대회의 오프닝 무대로 선보였다. 무관중 행사였다고는 하나 그가 TV나 오디오 쇼의 스튜디오뿐만 아니라 이 정도 스케일의 무대에서도 여유롭게 무대를 장악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처음 주목받았을 때의 랩과 가사의 패턴을 여전히 유지한 채로 꾸준히 자신의 역량을 한 단계씩 증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특정한 기믹을 자신의 무기로 삼은 래퍼들은 드물지 않으나, 그의 스타일은 아무래도 기존 장르 씬에서 쉽게 예를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다음에는 그가 또 무엇을 통해 컨셉에만 갇혀 있는 래퍼가 아님을 증명할지 궁금해진다.


아름다워 (디깅클럽서울 Ver)

스텔라장

김경태 (인천에서 도 닦는 사람) :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 은 비디오 게임 세상을 부수었고 드레이크(Drake) 는 틱톡을 정복했으며 케이리그는 드디어 개막했다. 어쨌든 저쨌든 무언가 이뤄지기 시작하는 2020년 (거의 반이 날아갔지만 -> 물이 반이나 남았나요 vs 반밖에 남지 않았나요?) 을 보면서 살짝 흥분했지만 결국 미와는 딱히 상관없는 일들임을 새삼 깨닫게 될 뿐이다. 아니 집 앞이 축구장이어도 아무 의미가 없으니 원… 케이1, 케이2는 물론이고 이러다 케이비오까지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분노의 5스텝을 재시작하려는 자아를 달래기 위해 아름다워 최신 버전을 들었다. 아름답다고 해주니 기분이 좋다. 분위기와는 달리 편안하게 부르기 쉽지 않은 노래인데 (따라 불러보면 알게 된다) 편안하게 불러줘서 감사하다.


Inspiration

Verbal Jint

심은보 (VISLA Magazine 에디터 / @shimeunboss) : <친구들의 취향>에 보낼 글을 쓰고 있자면, 내가 음악을 참 편협하게 듣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을 소개하려면 어쩔 수 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지난달에는 플레이리스트를 싫어하는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이번 달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 나는 영감이란 단어가 싫다. 영감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힘은 너무나도 크고 거대해서 특정 지점까지 도달하는 데에 쓰인 노력과 시간을 순간의 번뜩임이나 천재성 따위로 치부해버린다. 영감이라는 단어가 남용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대부분 글이나 인터뷰에 쓰인 ‘영감’이란 단어는 ‘영향’이라는 단어로 치환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영감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 곡을 들을 때다.
어릴 적, 버벌진트(Verbal Jint)의 [누명]을 처음 들었을 때를 기억한다. 한국 힙합보다 미국 힙합을 더 많이 들었던 내게 [누명]은 충격 그 자체의 앨범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The Good Die Young]이 나왔다. 버벌진트의 3집은 그에게 있어서는 과도기적 순간이었을 터다. 그가 “무간도”에서 적은 것처럼, 독기 가득한 음악을 만들던 [무명], [누명]을 거쳐 발표된 [The Good Die Young]에는 그의 생활과 밀접한 음악들이 담겨 있었다. 이후 버벌진트는 가요계에 몸을 담으며 김태균 같은 래퍼에게 “변했다.”라는 평가를 받기까지 이른다.
그렇다면 [The Good Die Young]은 [누명]에 비해 한참 부족한 앨범인가? 그렇다기에 나는 아직 이 앨범만큼 개인의 감정을 유려하게 풀어낸 한국 힙합 앨범을 들어본 적이 없다. 돈 얘기, 여자 얘기, 자기 자랑, 싸움질을 듣는 데 지친 한국 힙합 리스너는 나뿐만이 아닐 거로 생각한다. 지쳤을 때 지쳤다고, 지겨운 게 지겹다고 말할 수 있는 한국 래퍼가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The Good Die Young]은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의 [In My Mind]와 함께 나에게 길을 제시하는 앨범으로 작용한다. 물론 이 곡도 내게 영감이 되진 않는다. 그저 영향을 끼칠 뿐이지. 그나저나, 왜 대체 “Inspiration”만 freevj 채널과 스포티파이(Spotify)에 없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Lexii's Outro

Kehlani

김현호 (깜빡하고 집에 마스크 두고 온 사람) :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어떤 방법으로 남길 수 있을까? 아직 비슷한 상황을 맞이해보진 못했다. 하지만 켈라니(Kehlani)의 "Lexii's Outro"를 보며 괜히 한번 생각해봤다. 이 곡의 주인공인 렉시(Lexii)는 켈라니의 첫 EP부터 함께한 래퍼이다. 아직 20대 초반이지만, 올해 초 불의의 사고로 명을 달리했다. 켈라니는 그를 기리기 위해 오랫 동안 준비한 정규 앨범의 마지막 자리를 비워두었다. 덕분에 렉시라는 래퍼를 잘 모르던 나 같은 사람도 렉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타이트한 랩 구성과 쫀쫀한 발성이 인상적인 렉시, 특별한 일이 없지 않은 이상 이 곡은 렉시의 이름이 박힌 마지막 곡이 될 것이다. 켈라니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The Moon Song (Film Version)

Scarlett Johansson & Joaquin Phoenix

띠오리아 (케이팝애티튜드 / @theoria_) : 실은 이걸 쓰기 전에 4월의 취향으로 작성해둔 글이 있었다. 농담만이 가득한 그 글을 세상 어딘가에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지금은 이걸 공개하고 싶지 않아졌다. 뭐, 당연히 기분 탓이다. 올해 초부터 어쩐지 어느 때보다 더한 기분의 문제를 겪고 있다. 1년의 1/3이 지날 때까지 극복되지 못한, 사실은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갖고 있었을지 모를 문제와 쉼 없이 맞닥드리는 것은 생각보다 꽤 많이 피로하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잠깐이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혼자 살지도 않고,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도 있었기 때문에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진 못했다. 대신 스마트폰을 내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치워 며칠간 쳐다보지 않았다. 그것으로 어느 정도의 피로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남은 시간에는 그저 멍하니 누워만 있었다. 그렇게 누워있다 보면 이렇게 그저 표류하는 삶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고,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큰 안정감이 든다. 현실을 도피하는 데에는 그보다 좋은 방법이 없겠지만, 부작용은 언젠간 다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나는 그걸 극복하려고 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평소엔 꿈을 꾸지 않는 나지만 이맘때쯤은 매년 같은 꿈을 꾼다. 6년 전에 실제로 있었던, 그저 지극히 일상적인 내용의 꿈. 비현실적인 장면은 하나도 없지만 어쩐지 나는 그 꿈이 늘 너무 현실감이 없다. 당시에도 현실감이 없었으니까. 잠에서 깨니 문득 갑자기 뭔가를 보고 싶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her>를 봤다. 이 노래가 나오는 장면에서 왈칵 눈물이 났다. 이유야 잔뜩 있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고 기왕 눈물이 난 김에 펑펑 울었다. 울고 나면 시원할 줄 알았지만, 실은 더 답답해졌다. 다시 누웠다. 탈력감 때문인지 자연스레 잠이 들었다. 꿈을 꿨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의 일부일 것과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 궤도에서 공전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마다 가까이 닿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사이엔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거리가 늘 존재한다. 잠에서 깼지만, 한동안 그대로 누워있었다. 이걸 쓰고 있는 지금도 아마 머릿속은 여전히 누워있는 것 같다.


와이파이

새러데이

Urakkai haruki (연남동 음교익) : 티아라(T-ara)가 2천년대 말부터 차지하고 있던, 굳센 쾅수표 뽕 가요의 위치 그리고 니즈는 한 달에 한 번 음악 헛소리를 써 자빠지고 있는 어떤 인터넷 다메닝겐 힙스터 워너비 자식이 잘 생각할 수 없는 영역에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버렸습니다. 허나 그 거대한 토양의 후예인 다이아(DIA) 등이 맥락을 이어나가지 못했는지 혹은 의도적으로 다른 길로 가는지 모를 무렵, 케이팝 프로듀서 세대교체의 바람 가운데 아직 죽지 않았다는 저력을 보이기 위해 마치 악마에게 혼을 팔아 만든 것 같은 곡이 대체재로서 등장했으니 그것이 바로 모모랜드(MOMOLAND)의 "뿜뿜"이었지요.
그 기세를 몰아 - 물론 노래 단독으로 만들어냈다고 보기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하여튼 - 티아라가 머물던 무주공산에 성공적으로 안착을 하게 되었으나 화무십일홍이오 권불십년이라 오호 애재 통재로다 뭐요 유튜브 조회수 아직 잘 나온다고요? 하지만 뽕 가요는 죽었어! 이젠 없어! 하지만 다른 그룹 안에 하나가 되어 어떻게든 살아가!!(...)
에헴. 일인자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어느 업계나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다들 잘 뒤따라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상황에서..구 맹주의 섹시하고도 사랑스러운 곡에서 싸비 엑기스를 뽑아낸 뒤 신 맹주가 보여준 뽕 가요의 프레임에 블랙 잭처럼 후루룩 하고 자가봉합 수술해낸 것 같은 노래가 나왔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노래, 세러데이(SATURDAY)의 "와이파이" 되겠습니다. 아 솔직히 원곡들보다 더 많이 들었다 진짜 하…(구제불능)
이 노래… 최근에 가장 많이 들은 케이팝 중에 하나라 이렇게 선곡을 해 보았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좋은 것들을 잘 벤치마킹해서 만들어놓은 곡이라 듣기에 큰 부담도 낯섦도 없는 것이 장점이라고 운을 깔아 드릴 수 있고요. 또 어떤 길티 플레저에 의한 내면의 악의가 플레이할 때마다 살아나는 것도 곡을 듣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TOKYO DRIFT

TERIYAKI BOYZ

리마술 (무소속, 기호 3번) : 우리나라에서는 딱히 화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난 한 달 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시안 래퍼들과 일본 힙합 신의 래퍼들 사이에서는 ‘TOKYO DRIFT FREESTYLE’ 챌린지가 꽤나 유행했다. 자가 격리를 지키면서 맘껏 랩 실력을 자랑하는 이 챌린지 시리즈의 스타트를 끊은 것은 바로 88라이징(88rising)의 리치 브라이언(Rich Brian)이었다. 리치 브라이언은 3월 25일 코로나19로 인한 자가 격리를 응원하기 위해 집에서 ‘TOKYO DRIFT’ 비트에 랩하는 모습을 담아 공개했다.
그 덕분에 2006년 영화 <패스트 & 퓨리어스: 도쿄 드리프트> OST로 제작된 데리야키 보이즈(TERIYAKI BOYZ)의 ‘TOKYO DRIFT’ 비트는 뜬금없이 14년이 지나 수많은 래퍼들의 벌스로 채워지게 됐다. 2000년대 넵튠즈(The Neptunes)의 비트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그 위에 담긴 래퍼들의 다채로운 벌스도 흥미롭다. 한국계 아티스트 오드리 누나(AUDREY NUNA)부터 중국의 하이어 브라더스(HIGHER BROTHERS), 일본의 제이피 더 웨이비(JP THE WAVY)와 아나키(ANARCHY), 베트남의 수보이(SUBOI) 등 여러 아시안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는데, 아시안 래퍼들의 재미있는 도전을 한 바퀴 쭉 보고 나니 갑자기 오리지널이 보고 싶어졌다. 영화는 굉장히 재미없었지만, 지금 들어도 버벌(VERBAL)의 벌스는 타이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