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트와 친구들

친구들의 취향: 제 10호

바이트는 음악과 음악 이야기를 사랑합니다. 바이트의 친구들도 그렇죠. 바이트의 친구들이 최근 좋아했던 음악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숨은 그림 찾기

Panic

이현호 (Bite) : 유튜브를 통해서 지나간 TV 쇼를 10초 만에 검색해 시청하는 기분은 2020년 현재 '타임머신'의 의의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다. 버스를 기다리며 이 노래를 듣다가, 문득 20여 년 전 패닉은 이 노래의 퍼포먼스를 어떤 식으로 선보였는지 궁금해졌다. 유튜브에 검색해 보니 방송사에서 올린 공식 영상은 없었지만 한 팬이 올린 1998년 SBS 인기가요 라이브 영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장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정쩡한 모습으로 무대를 누비는 당대의 반항아 이적 형과 라이브를 위해 앨범보다 많은 파트를 분배받았지만, 가사가 익지 않은 듯한 어린 시절 나의 우상 진표 형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1998년스럽다 싶었다. 탑골 가요니 하는 것들도 반짝 유행으로 지나가 버린 시점에 이런 감상을 적는 것도 뒷북일 수 있겠지만, 잊고 지내다가도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는 문화적 기록들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Make Love

Daft Punk

김경태 (인천에서 도 닦는 사람) : 뭔가 하릴없는 날에는 DIC 역에서 집까지 걸어간다. IC항을 끼고 가는 이 코스는 빠른 걸음으로 20분 정도 걸리지만, 곳곳에 위험이 도사린다. 갯강구는 아니지만 뭔가 한국 바퀴벌레랑 혼혈인 것 같이 생긴 자들은 주인 없는 개 마냥 대낮에도 뽈뽈거린다. 또 컨테이너를 타고 자신들도 모르게 입국했을 정체 모를 자들도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맘때면 색깔이 시뻘겋고 시커멓고 공격적인 거대 나방같이 생긴 자들이 (중국 매미인가 그럼) 단체로 나타난다. 나무에 단체로 붙어있는 것을 좋아하는 이 자들은 날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좀 더 위험하니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도로는 4차선이지만 항구와 물류창고를 오가는 거대한 트럭들이 뱃고동 수준의 빵빵이를 앞세워 택시와 승용차들을 쫓아내며 달린다. 분명 인도를 걷고 있어도 갓길을 걷는 것 같아 불안해진다. 카메라는 개뿔 인적이 아예 없는 곳이라 누군가 뒷머리를 긁으며 주섬주섬 시체를 싣고 가도 아무도 모를 수도 있는 것이다. IH대 병원이 멀리 보이기 시작하면 굳이 걸어서 집에까지 가야만 했는가 자문해보게 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거다. 버스 정류장은커녕 횡단보도나 육교도 없는 이 코스는 한번 들어서면 끝까지 가던가 다시 돌아가던가 둘 중 하나뿐이다.


It`s bad

久保田利伸

Urakkai haruki (연남동 음교익) : 신 고산케 이후의 쟈니즈 왕자님인 타하라 토시히코- 토시쨩은 성자 이모님과의 초코렛 CM도 그렇고 抱きしめてTonight의 수트 간지 퍼포먼스로도 마 유명합니다만 그 전의 네타 중 하나가 바로 It`s bad 라는 노래이지요. 너튜브 같은 곳에서 보면 유사 문워크같은 걸 시전하면서 다꾸앙 냄새 가득한 랩을 구수하게 구사하시는 타하라 선생의 영상 등이 나올 것입니다만...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뭐 그런 게 있나 보다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의 원곡을 더 빨리 알았다면 타하라 버전의 잇츠 배드를 듣는 게 더 괴롭거나 하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보시는 영상은 87년에 처음으로 그리고 공중파에서는 아마도 그 이후로 확인된 바 없는 원곡자 쿠보타 토시노부의 It`s bad 라이브 무대 되겠습니다.
그 왜 다들 그런 경험 있으시잖아요. 상대적으로 어리고 금전이 부족할 때 뷔페 같은 데서 먹어본 일 있으실 법한 참치를 참칭한 생선회 비스무리한 무언가의 기억이 오래가서 으 난 참치회 맛없던데 하다가 혼마구로 상참치나 츄토로 같은 거 우연히 아부리로라도 한 입 자시고 나니 세상에 이런 게 있다니 내가 안 참치 맛은 다 가짜였어!! 하고 마음속으로 외치는, 만화 히스토리에의 주인공 같은 그런 상황 말입죠. 제가 쿠보타 버전의 잇츠 배드를 들었을 때 딱 그 느낌이었습니다 야 이 빌어먹을 세상아…!!
제가 랩을 알면 뭐 얼마나 알겠습니까마는 쿠보타 선생 랩이야 지금 들어도 촌삘나지 않는 데다.. 리듬과 그루브에 맞춰 뛰어놀며 지르는 가창력 등에 취하다 보면 4분 아아따 금방 지나가 버립니다요. 마...아무래도 타하라 버전은 사비 뒤에 쓸데없는 가요의 군더더기가 시대에 어울리지만, 원곡과는 맞지 않게 덕지덕지 붙여져 있어 살짝 눈쌀을 찌푸리게 될 수밖에 없기도 하다 보니 더욱 이 곡의 소중함이...빛난다...!
문제는 이게 본인이 데뷔 전엔가 음악 관계자들한테 돌린 데모 테이프죠 すごいぞ!テープ 에나 실려 있고 정식 쿠보타 버전이 없다는 점….아니 Missing이나 流星のサドル 같은 건 잘도 다시 불러놓고 이 초 명곡을 아끼게 하다 X되게 했다는 점에 대해 또 화가 안 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어, 다 때가 있는거예요 그 당시 밖에 낼 수 없는 맛이 있다, 이겁니다 지금 다시 불러도 안 된다고!!!


I Am Not My Hair

India.Arie

띠오리아 (케이팝애티튜드 / @theoria_) : 7년 3개월 만에 머리를 잘랐다. 거창한 계기는 없었지만, 굳이 따지면 가족, 더 정확히는 엄마 때문이었다. 그간 머리를 자르지 않았던 이유도 굳이 따지자면 가족 때문이었는데 자른 이유도 가족 때문이라니 뭔가 우습지만. 애초에 나에게 머리가 무슨 대단한 가치 또는 의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머리를 자르지 않았던 건 그저 내 머리에 대해 사람들이 신경 쓰고 나에게 뭐라 하는 게 싫었기 때문인데, 그중에 제일 많이 신경 쓰고 말하는 사람이 가족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족이 그 이유가 됐다. 그 속내를 좀 더 살펴보면 그저 누군가가 나를 이런 개인적인 부분까지 제어하려고 드는 게 싫었던 것일 테고.
자르기 전날, 엄마가 내 머리 때문에 스트레스 그만 받고 싶다고 그랬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고작 내 머리 때문에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냐, 그 소리를 듣는 나는 안 그럴 거 같냐, 내가 왜 굳이 머리를 안 자르는지 그리 이야기했는데도 아직도 그걸 모르냐는 등의 소리를 내뱉었다. 이런 식의 말다툼을 한 것이 수년이나 됐는데도 심장이 그리 좋지 않은 엄마는 그 후에 병원에 다녀왔다. 난 사실 잠들어 병원을 갔다 온 줄 몰랐다.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로한 상태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보다는 감정이 조금 격해질 거 같으면 어떻게든 도피하려는 내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병원에 갔던 이야기는 깨고 나서 후에 들었고, 사실 이조차 당장 자르겠다 마음을 먹게는 못했지만 생각할 계기 정도는 충분히 되었다.
다음날 엄마에게 대화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나의 요즘에 대한 이야기를 짧지도 길지도 시간 동안 나눴고, 서로에게 꽤 중요한 대화도 있었지만, 우습게도 이렇게 아무리 대화해봐야 어차피 서로를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 같으니 앞으로는 이제 이런 시간을 가질 일은 없을 것이라는 나의 통보로 대화를 끝맺었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내게 자꾸 결론과 해답을 내리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들어도 나는 엄마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끝까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스트레스로 인하여 심장이 무리가 올 정도라는데 내가 굳이 안 자르고 버틸 정도로 패륜아는 아니라서 머리는 지금 가서 자르고 올 테니 그냥 앞으로 서로 신경 쓰지 말고 살자고 했다.
하지만 이해가 잘 안 된다. 머리가 아주 길어진 다음에야 머리 길이에 대해 신경 쓰는 게 아니라 머리가 길어서 세탁할 때 거슬린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댔지만, 내 머리가 허리를 안 넘을 때도, 어깨에 갓 닿을 때도, 머리가 묶이지 않을 때도, 그저 구레나룻이 조금 지저분하다 싶을 정도로 짧을 때도 내 머리에 대해서 뭐라 했다. 이제 와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고 정말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여전히 내 머리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자꾸 든다.
ps. 이 노래를 고작 이런 유치한 이야기에 붙이는 건 인종차별을 노래하는 이 곡에게는 어쩌면 모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


Love Again

백현

김수희 (ㅍㅍㅅㅅ에디터/케이팝관전러 / @wolfandhorse) : 5월의 끝자락에 배수진을 쳤다. 새로 시작하는 일에서 2년 내 승부를 보기로 했다. 이제 약 2주일 정도 보낸 셈이다.
이전의 내 생활보다 밀도 높은 1개월을 보냈다. 압박감이나 불안감도 만만치 않았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건 회한이었다. 미래를 설계하지 않고 보냈던 나날을 구체적으로 후회했다. 그때 이렇게 살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돌아보니 더 잘 할 수 있던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마치 머릿속에 프린세스 메이커를 깐 것 같았다. 내 얼굴을 한 프린세스 메이커 주인공은 시키는 대로 쑥쑥 잘 자라서 과학자도 하고 소방관도 하고 왕도 된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면 익숙한 내 방이었고, 내 삶이었다. 그러면 별수 없이 이 삶을 선택한 이유를 떠올려 스스로를 긍정해야만 했다. 왜 이렇게 살기로 했더라?
그 막막하던 5월의 어느 날 백현의 두 번째 앨범 <Delight>가 나왔다. 첫 앨범 <City Lights>는 당혹스러운 첫인상을 가진 앨범이었다. 백현이 EXO 활동 내내 고수하던 활기찬 이미지와 정반대의 현대적이고 고혹적인 R&B였다. 이게 백현의 음반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이돌 솔로 데뷔의 문법은 기존의 캐릭터를 바탕에 둔 상태에서 솔로 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이미지를 더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City Lights>는 새롭다기보다는 생소했다. 그 연장 선상에 서 있는 이번 앨범 <Delight>에 다다르고 나서야 알겠다. 단순한 깜짝 변신이 아니었구나. 이게 이 가수가 하고 싶어 했던 음악이구나.
내내 마지막 곡 <Love again>만 듣고 살았다. 종언을 고한 관계, 그러나 쉽게 보내지 못하는 화자의 애달픈 마음이 이해돼서일까. 그렇게 음악 안쪽의 이야기에 공감했고, 음악 바깥쪽으로는 백현의 행보를 공감하고 또 동경하며 보냈다. 주변 사람들이 생소해 해도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의 모습. 오랜 도움닫기를 거쳐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달하는 사람의 그림자.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잘할 수밖에 없다. 백현의 음악이 그렇다. 나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Living Legend

D.O (Feat. Infinite Flow, Verbal Jint)

리마술 (무소속, 기호 3번) : 힙합을 좋아하게 된 건 2000년. 그 당시 한국 힙합에서는 제목이나 내용에 힙합이란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일이 많았다. 2000년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은 에미넴의 [MMLP]와 MP 힙합 컴필레이션, 주석의 EP, DJ DOC 5집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갑자기 타임라인이 20년 전으로 돌아가느냐 하면, 오늘 이야기할 곡이 2004년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해외 힙합을 한창 많이 듣던 시기였지만, 간혹 나오는 한국 힙합 앨범은 꼭 챙겨 들었던 해. [Uncut, Pure!!]가 나왔던 해, 소울컴퍼니의 [The Bangerz]가 나왔던 해. 상대적으로 올드한 라인업이 모인 D.O의 [The New Classik... And You Don't Stop]도 나왔다. 지금 들어도 너무 좋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VJ 열혈 팬이었던 내가 이 트랙 첫 벌스를 처음 들었을 때 들썩이던 느낌은 기억이 난다.
‘힙합구조대’가 실린 이 앨범은 어떤 이유 때문인지 음원 사이트에서 오랫동안 서비스가 되지 않았는데, 6월 19일 정식 재발매가 됐다. 비슷한 추억팔이를 하고 싶은 동년배들은 음원 사이트로 가보자.


오염

화지

김현호 (A&R) : 메세지, 퍼포먼스, 안정적인 톤. 화지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중에서도 톤이 제일 좋다. 화지가 개똥철학을 말한 적은 없지만, 왠지 화지의 입을 통해서라면 개똥철학도 그럴듯한 가치관처럼 느껴질 것 같다. 그만큼 화지의 목소리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화지의 신곡 "오염"은 VMC에 입단하면서 낸 맥시 싱글의 타이틀곡이다. 화지는 불안을 키워드 삼아 성공의 음과 양을 모두 겪는 힙합의 성장통을 정면으로 관통한다. 좋은 박자와 좋은 이야기로 모두가 더욱 건강해질 수 있는 곳.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이런 노래를 들을 때마다 다시 작은 기대를 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