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트와 친구들
친구들의 취향: 제 11호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친구들의 취향입니다. 어김없이 바이트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지난 4월에 좋아했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Dear Genovese
Nell
이현호 (Bite / @hyunho.bite) : 창조적인 작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가 ‘용기’라는 가치에 대해서 충분한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주 생각하게 된다. 용기라고 하면 어린이 만화영화에서 주인공이 결정적인 순간에 발휘하는 무기 같은 것이 먼저 떠오르지만, 살펴보면 우리 삶의 여러 순간들에도 용기를 발휘해야 하는 순간들이 그리 드물지 않다. 나를 위해서, 타인을 위해서, 혹은 이름 모를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크고 작은 용기를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작품들이 더 많았으면 한다.
Dear Genovese는 드물게 용기를 주제로 삼은 서정적인 곡이다. (다만 위 링크는 재편곡 앨범에 실린 버전으로, 2014년 발표한 오리지널 버전의 편곡은 서정적이지만은 않다.) 구체적으로는 “타인의 눈”이 아닌 나의 눈으로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한 곡이다. 곡의 제목이 다소 생뚱맞을 수 있는데, 나무위키에 따르면 ‘키티 제노비스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Attention
SHINee
이재은 JANE (Bite / @janebelizzie) : 샤며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매일 샤이니 영상을 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이번 7집 “Don’t Call Me” 활동으로 입덕한 사람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심지어 태어나 처음으로 샤이니의 앨범 전곡을 재생해 봤다. 듣기로는 모든 트랙이 타이틀 후보였을 정도로 고퀄리티를 자랑한다고 하는데, 들어보니 아주 근거있는 자신감이었다. 기본적인 곡의 구성이나 분위기, 멤버들의 소화력은 물론이고 아주 작은 단위의 소리 소스들까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포인트들로 가득한 앨범이었다. 그 중에서도 8번 트랙 “Attention”을 가장 많이 즐겨 들었다.
우선 나는 노래를 들을 때 멜로디보다도 가사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첫번째는 섬세한 표현으로 감동을 주는 가사, 두번째는 가사 내용의 상황이나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가사를 좋아한다. 두 가지가 동시에 되면 베스트고, 거기에 멜로디와 음색까지 조화롭다면 더욱 즐겨듣게 된다. “Attention”은 두번째에 해당하는 노래였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휘파람 소리로 시작하는 도입부에서부터 봄 밤의 공기가 느껴졌다. 마치 하이틴 영화에서처럼, 열려있는 2층집 방 창문 너머로 여자 주인공을 부르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과 두 사람이 그런 봄 밤의 길을 걷는 모습이 그려졌다. 4월 봄날의 따듯하면서도 산뜻한 공기와 참 잘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이 들어서 4월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계속 듣고 있다.
저 달
문수진 (Feat. 태일 of NCT)
ㅂㅇㅇ (Bite / @120p6) : 어느덧 4월마저 지나가 버렸다. 더는 연초가 아니란 걸 실감해버려서 그런 걸까? 말없이 지나가 버린 저 달이 야속하다.
이 곡의 가사는 그런 얘기가 아니겠지만, 현 시국 때문에 친구들도 잘 만나지 못하다 보니 괜히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SNS를 통해 공유되는 지인들의 일상을 보다 보면 그들의 하루하루가 궁금해지면서 나도 그 자리에 있는 상상을 해본다. 좀 크리피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 속 이야기에 몰입하여 상상하듯이 일상 속에서도 참 쓸데없는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보통 그런 시답잖은 생각들은 밤늦은 새벽에 활발히 이루어지는데 나에게는 이 곡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머릿속에 흘러나오는 기억들을 훑는 시간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움보다는 이유 모를 공허함이 더 큰, 멍하니 있다가 한숨 크게 푹 쉬게 되는 감정들.
그러다가 한참 후에 정신 차리고 ‘안 되겠다, 자야겠네’라 하게 되는 순간이 오는데, 이 곡도 반복 재생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하지만 괜히 또 목소리가 달콤해서 한 번만 더 듣게 되는 곡이다.
Me Or Us
Young Thug
snobbi (HIPHOPLE 에디터 / @snobbi) : 영 떡의 2017년 작 [Beautiful Thugger Girls]에 불현듯 꽂혀 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본작의 수록곡인 “Me Or Us”를 꼭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릴 나스 엑스 덕에 ‘컨트리 랩’이라는 용어가 수면 위로 오르기 전, 그보다 먼저 발랄히 기타 줄을 튕긴 영 떡의 발칙함과 순수한 탐구심이 그대로 녹아든 곡이다. 수많은 메이저 뮤지션이 나서서 영 떡의 피처링을 원하길 시작한 이유, 그렇게 팝스타들의 팝이 힙합이 되고, 영 떡의 힙합이 팝이 된 이유를 “Me Or Us”에서 단번에 납득할 수 있다.
Don’t Call Me
SHINee
김윤재 (0개국어 능력자) : 며칠전 친한 친한 친구가 데뷔한지 벌써 13년차인 이 그룹에게 입덕을 했다. 강산도 10년이면 변하고 곤돌라도 생기고 와이파이도 생긴다는데...뭐 이정도면 숙성의 민족 한국인 맞다. 그래도 덕분에 내 십대시절을 책임졌던 oppa 들의 노래를 정말 오랜만에 (반강제로) 들었다. 그 중에서도 역시 타이틀이 좋았다. 이번 샤이니 앨범은 전체적으로 90년대 후반에서 00년대 초반의 미국 여자그룹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곡 또한 그렇다. 특히 코러스 파트에서 Destiny Child의 Survivor이 연상되는건 그냥 개인적 느낌일까? 가장 좋은 부분은 후반부의 클래식 피아노 선율. 드라마틱한 피아노 사운드가 힙합 비트와 섞이면서 오히려 기괴한 느낌을 주고 유리창을 문지르듯한 사운드가(표현의 한계^^*) 노래 전체를 관통하는데 콘셉츄얼하고 중2병 시절 내가 깨어나는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사회생활이 더 중요하므로 잠재웠다. 4월 한 달동안 참 잘 들었다. 그러고보니 태민이가 군대를 간다던데 태민이는 영원히 16살 아니였는지…세상이 말세다…
Antifreeze
검정치마
김나일 Nyle Kim (그래픽 디자이너 / @egyptnileriver)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로맨틱한 노래다.
내가 여름을 굉장히 좋아하기도 하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를 내 몸으로 느낄 즈음 부터 이노래를 주구장창 틀어 놓는다. 언젠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나한테 검정치마의 ‘넌 내 여름이야’라는 가사를 읊어줬으면 좋겠다. 굉장히 좋아한다! 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하고 나를 상대방의 영원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말 같다.
이 노래를 듣기 전까지의 나는 영원이라는 말에 항상 불신을 갖고 살고 있었다. 모든 건 죽기 마련이고 사라지기 마련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또한 영원하지 않을거야라고 생각해왔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누구보다 그렇게 믿어왔다. 중학생 때였나 고등학생 때 친한 친구 두명과 노래방에 갔다가 그때 검정치마의 “Antifreeze”라는 노래를 처음 듣게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운명처럼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는거야’ 라는 파트에 꽂히게 되었다. 나는 사실 영원한 존재에 불신을 가진게 아니라 사실은 누구보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존재를 믿고 싶었던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 이후로도 상처를 받을 때나 우울해질때면 '영원한건 없어! 사람은 다 떠나!’ 라고 혼자 소리치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외롭고 영원을 믿고 싶은 것 같다. 안티프리즈를 듣는 그 순간에는 내가 영원을 믿는 만큼 앞으로 내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Introvert
Little Simz
와다킴 (직장인 / @meongtoes) : 눈에 띄는 뮤지션이 쏟아지던 때가 있었다. 다수는 스스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몇 년 동안 초반의 스포트라이트에 비해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지 못했고, 곡을 선보이는 빈도 자체도 줄었다. 그런 가수를 볼 때마다 대중과 평단의 기대치가 뮤지션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 부담을 떨쳐 내고 비상하는 뮤지션에게 더욱 주목하게 된다. 리틀 심즈가 그렇다. 공백은 있었으나 길지 않았고, 퀄리티는 때로 부침이 있었으나 양질의 랩과 메시지라는 본질은 잃지 않았다. 그런 그가 2021년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Introvert"와 'Woman"이라는 싱글을 차례로 발표했다. 랩과 메시지와 퀄리티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춘 곡이다. 나아가 앞으로 어떤 앨범을 보여줄지에 대한 포부까지 느껴지는 작품이다. 메시지를 영상으로 비틀어 낸 실력도 수준급이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 앨범 발매가 4개월이나 뒤인 9월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기다리지?
When In Summer, I Forget About The Winter
yaeji
Stel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 사람 / @nonotlikethat) : 안녕하세요, 친구들의 취향은 처음입니다. 이 글은 말하자면 <친구의 친구의 취향>이라고 이름붙여야 할 것 같네요.
별일 없이 지내고 있다는 말이 제일 좋은 소식인 요즘이다. 세상이 뒤숭숭해서일까, 음악도 예전에는 심장 떨리게 시끄러운 것들로 찾아들었다면 이제는 전하려는 말이 차분하게 귀에 와서 얹히는, 공기 함량이 높은 음악이 좋다.
몇년 전 마성의 트랙 Raingirl로 빌보드 차트와 전세계 무대를 휩쓸고 영국의 XL레코딩과 계약한 반짝이는 뮤지션 예지(yaeji). 그런 예지의 새 뮤직비디오에는 화려한 세트나 이펙트 대신 너무나도 한국적인 초코푸들과 안마의자, 친할아버지와의 영상통화가 등장한다. 마음이 편안하게 풀어지는 비디오 위로는 꿈결같은 보컬 트랙이 얹힌다.
지난 봄에 발매된 믹스테이프 ‘What We Drew (우리가 그려왔던)’은 이전 EP에 비해 사운드는 더 정교해지고, 가사는 더 솔직하고 자유로워졌다. 예지가 본인의 SNS 계정과 인터뷰에서 무수히 이야기해온 ‘연결와 연대’, ‘다양성이 만들어내는 변화’에 대한 믿음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업에 참여한 뉴욕 기반의 래퍼 Nappy Nina, 일본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DJ YonYon, 다다이즘 클럽의 멤버들 모두 전세계에서 모인 ‘친구들’이다. 가사에서도 무수히 ‘연결’의 소중함에 대해 노래한다.
여름도 가을도 아닌 4월이여서일까 ‘When In Summer, I Forget About The Winter’ 트랙처럼 과연 여름이 되면 지난 겨울의 일을 다 잊어버리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처럼 두루뭉술한 시간이 흘러 여름 그리고 다시 겨울이 되어도, 우리는 어떻게든 계속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계속 연결을 이어갈 것이고. 천천히 확실하게 세상은 나아질 것 같다.